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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1. 14:21 As it is

나의 글은 아니다. 그러나 나 역시 어릴 적 그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아직도 나의 집에는 그의 멋진 투구폼의 사진이 있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아직도 영웅이며 불사조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를 그렇게 바라보게 하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단순히 투구 폼이 멋지고 공을 잘 던져서가 아니었다.

조금 있으면 '수퍼스타 감사용'이란 영화에서 그가 나온단다. 물론 그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아니다. 감사용이 넘고 싶어하는 경쟁자로서 그려진 것 같다. 그가계속적인 놀라운 기록과 함께 늘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던 운동 스타였다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공을 던지는 야구 선수 이상의 의미를 나에게 주는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꼭 그를 만나보고 싶다.

박철순 영구 결번식 기념 동영상보기

프로통산 15년 동안 231경기 76승 53패 20세이브, 통산방어율 2.95를 기록한 것이 박철순의 기록이다. 매년 고작 5승 정도를 올렸을 뿐이라고 보여지는 이 기록의 박철순.. 그러나 그는 야구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한국 야구 불세출의 영웅이다. 국보급 투수 선동렬, 한시즌 최다승에 빛나는 장명부, 세대를 풍미했던 최동원등.. 기록과 성적으로 박철순을 압도하는 투수들은 많다. 그리고 왕년의 홈런왕 이만수, 김봉연.. 영원한 3할타자 장효조등.. 타자까지 찾아본다면 박철순의 통산 기록은 어쩌면 그의 선후배들이 적어간 기록에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야구라는 스포츠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름..그것은 바로 박철순 이다.

배명고, 연세대를 거쳤으며 한국 최초의 쿠바전 승리투수인 박철순은 79년 한미 대학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인상적인 피칭을 보여주며, 한국인 사상 최초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한다.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싱글 A 팀에 입단한 그는 빠르게 실력을 향상시켜 가며 트리플 A 까지 오른 한국 최초의 선수이다. 1982년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두산의 전신인 OB의 구단주였던 박용민 단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LA다져스를 통해 밀워키 브루어스의 구단주와 독대를 하게됐고, 어렵사리 박철순을 영입하는데에 성공을 한다. 박철순이 1956년 3월 12일생이니 당시의 나이 26세..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박철순은 주위의 기대를 저 버리지 않았다. 82년 3월 28일 LG의 전신인 MBC 청룡과의 경기에 처음 등장한 그는 타자를 압도하는 스피드와 스크류볼, 팜볼등을 구사하며 상대를 유린, 9-2로 승리하고 첫 승을 신고한다. 특히나 당시에 박철순이 던지던 너클볼은 이전까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구질로 타자들에게 마구 라는 소리를 들으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투수는 공만 잘던지면 된다던 당시의 우리 야구 수준을 뛰어넘는 뛰어난 수비로 "투수는 제 5의 야수"임을 증명했다.


이러한 박철순은 프로야구 원년인 이 82년에 세계 야구사에 남는 대기록을 수립하는데, 그것이 바로 22경기 연승이라는 한시즌 최다연승 세계 신기록이다. 4월 10일부터 9월 18일까지 161일간 30경기에 등판해서 22연승을 거둔 박철순은 시즌을24승(13완투승, 7구원승)4패 7세이브, 방어율 1.84 로 마치면서 원년MVP와 방어율 승률 다승 기록상등 투수부분 타이틀을 독식하기에 이르고, 나아가 한국시리즈에서 한수위의 전력이라 평가받던 삼성에게 4승 1무 1패로 OB가 역전 우승을 하는데에 기폭제가 된 1승 2세이브를 올렸다.

그러나 박철순의 영광은 여기서 주춤하게 되는데.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던 그가 전지훈련중 요추간판 헤르니아라는 허리 부상을 입게 되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결국 83년 시즌을 뛰지 못하던 그는 MBC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인 9월 22일 팬서비스 차원에서 등판했으나, 그를 성원하는 팬들의 함성이 그치기도 전인1회 1사 1,2루서 송영운의 타구에 허리를 맞고 쓰러져 실려나가게 된다.이해 11월 30일 결국 그는 LA의 센트럴 메모리얼 병원에 허리치료차 입원을 하게되고, 4개월 만인 84년 4월 다시 돌아오는데.. 그런 그를 바라보던 팬들을 놀라게 한것은지속적인 약물치료와 진통제의 복용으로 그의 머리카락이 탈모증세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찾아 나가던 박철순은 85년 9월 22일 또다시 허리통증이 재발하여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되고, 이듬해 8월 17일 대전서 한화의 전신인빙그레전에 등판하여 4-2의 역전승을 거두면서 9개월만의 첫승을 거둔다.이 해에 박철순은 13경기에 등판해5승 3패, 방어율 3.54를 기록했고, 사람들은 이때부터 그를 불사조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88년 3월 15일, 그의 날개를 완전히 꺽어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고야 만다. CF촬영중에 왼쪽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수술을 마친 그에게 닥친 문제는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느냐가 아닌, 정상인의 삶을 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철순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상인의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그는 물리치료와 한방치료, 싸우나등을 병행하며 철저한 자기관리를 했고 걷는 것 조차 자연스럽지 못했던 스스로를 다시금 다잡아 갔다. 그리고 마침내 89년 6월 1일, 청주 빙그레전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감격의 승리를 기록하니 87년 10월 1일 기아의 전신인 해태 전 이후 650일만의 승리였으며, 33세라는 운동선수로선 적지 않은 나이를 감안하건데, 그것은 차라리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철순의 전설은 이제 부터였다. 90년 7월 5일 해태전에서 5-0 완봉승으로 1500일만에 완봉승을 거두고는 91년부터 94년 매년 7승을 기록했다. 92년 10월 9일 해태전에서 다시완봉승을 거두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프로야구의최고령 완봉승 기록이며 이때 그의 나이 37세(36년 5개월)였다. 93년 8월21일 빙그레전에서는 6타자를 연속으로삼진으로 돌려 세웠는데이것은 당시의 연속타자 삼진 기록과 타이었다. 그리고 열흘뒤 해태와의 경기에선 개시와 동시에 2이닝동안 6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워 경기개시 연속삼진 기록을 세웠다. 94년 7월 8일 삼성전서는 개인 최다 기록인 한경기11탈삼진을 기록하며,10회 연장까지 완투승을 기록, 연장전 최고령 완투기록을 수립했다. 8월12일 현대의 전신인 태평양과의 경기에서는 다시 완봉승을 기록, 자신이 갖고 있던현역 최고령 완봉승 기록을 38세 5개월로 연장 시켰다. 95년4월19일 LG전서의 승리로 7연승을 기록하며최고령 연속경기 승리 신기록 (39년 1개월 7일)을 수립하며, 이 시즌 9승 2패를 기록, OB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공헌했으며,10월 20일 13년만에 한국시리즈 등판해서 한국시리즈최고령 등판 기록을 세우고(39세 7개월 8일), 끝내는 우승.. 13년 만의 우승을 기록하고는 선수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려 많은 야구팬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96년 7월 30일 LG전에서는 세이브를 기록하여, 최고령 세이브 기록(40세 4개월 18일)을 세웠으며, 9월 4일 한화전 승리로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을 40세 5개월 23일로 연장시켰다.


기록의 사나이, 불사조, 한국야구의 산증인으로 한국야구의 역사와 영욕을 같이해왔던 거인 박철순은 결국 세월의 흐름앞에 42세에 이른 1997년 4월 29일 LG전이 끝난 후 공식 은퇴식을 갖고, 선수생활을 마감했으며, 그의 백넘버 21번은 2002년 4월 5일 두산베어스의 영구결번으로 남아, 잠실 구장 한켠에 그의 이름과 함께 남아있다. 두산베어스라는 구단이 존재하는 한, 한국 야구가 계속되는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선수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그 이름을 기린 것이다. 그의 은퇴경기를 보러 대학교 2학년이던 당시 시험 두 과목을 펑크내고 잠실로 갔다. 경기는 엉망이었다. 박철순은 등판하지 않았고, 두산은 서울 라이벌이라는 LG에 맹폭당하며 10점 이상을 실점하고 대패하고 말았다. 스포츠는 이벤트가 아니기에, 경기에 최선을 다한 LG를 뭐라할 수 없거늘... 하지만 그럼에도 박철순이라는 거인을 보내는 마당에 실력 이상의 플레이를 보이는 LG가 너무나 미웠다. 그리고 공 하나조차 던지지 않고 경기가 끝난뒤에야 마운드에 볼을 뿌리는 박철순 선수를 보며, 왜 한 개의 공이라도 경기에서 보여주지 않고 은퇴하는가.. 하는 작은 원망이 일었다.

그러나 나중에야 알았다. 박철순이라는 선수는 이미 공을 던질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철순이라는 투수는 지금 나보다도 더 정확히 공을 던질 수 없을 정도로 어깨가 부서진 상태라는 걸.. 언젠가 경기중에 박철순이 145Km/H 의 볼을 뿌리자 "저 박철순 선수가 140을 넘기는 스피드로 볼을 던져요!!" 라면서, 조금은 울먹이던 하일성 해설위원이 생각난다. 40을 넘긴 나이라 해도 미국의 놀란 라이언은 이미 160Km/H 에 육박하는 볼을 뿌린 바 있거늘 그것이 뭐가 대수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후에 내가 알게된 사실은 조금 더 충격적이었다. 노장 박철순의 투구폼을 기억하는가? 그는 와인드 업 후 유독 키킹을 높이 해서 발을 머리위까지 끌어 올려 공을 던지곤 했다. 텍사스에서 뛰는 박찬호가 LA 입단 초기에 했던 것 처럼 말이다. 그의 투구폼이 그렇게 바뀐 이유를 당연히 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제와서 몇몇 지인들을 통해 안 사실은 너무도 충격이었다. 이미 그때에 박철순의 어깨는 만신창이가 되어서 제대로 된 스피드의 볼을 던질 수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발을 높이 들어 올려, 발이 내려갈 때의 속도와 탄력을 이용해서 몸의 회전을 가져와 볼에 스피드를 붙였다는 것이다.정상인처럼 걷기조차 힘들다는 그 왼발을 들어올려서 강하게 땅에 내려꽂아 내고, 디스크에 이은 세 차례의 부상으로 그를 괴롭혔던 허리를 회전 시켜서...그는 그렇게 볼을 미트에 꽂아 왔던 것이다.


작년 올스타전에 앞서 열렸던 올드 스타전이 기억난다. 등판한 박철순은 웃으면서 볼을 뿌렸지만 공은 타자들에게 얻어맞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결과는 중요치 않다. 그런 그가 아직도 볼을 만지며 많은 사람들의 의미가 되어 준다는 것..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야구가, 또 스포츠가 얼마나 사람에게 감동과 눈물을 선사할 수 있는지 증명되는 것이다.

지금은 야구 평론가로 또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철순..

그가 이후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삶을 살아가던 간에, 그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에이스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잠실 야구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팬들의 가슴을 적셔왔던 권인하의 "에이스를 위하여"와 프랑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와 더불어....


posted by johnworld
2005. 5. 21. 14:19 As it is

어제 주일 예배 시간이었다.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고 있던 중... 갑자기 몸이 좀 이상했다... 몸을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성경을 보려고 고개를 숙이려고 했는데... 그것이 제대로 되질 않는 것이었다. 순간 매우 당황했다. 목도 몸도 제대로 컨트롤이 되질 않는...

예배가 끝날 때까지 그런 상황은 계속되었고, 예배가 끝난 이후에도 몸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지럽기도 하고, 앞으로 쓰러질 것 같기도 하고... 가뜩이나 그곳은 2층이었다.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는 사람처럼의자를 꼭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나의 몸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놀랜 가슴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 몸은 제 컨디션이 되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때인가? 한번은 버스를 타고 집에 귀가하고 있는데, 시내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여성이 갑자기푹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리곤 일어설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여성은 매우 당황해 하는 빛이 역력했고, 뒤에서 부축을 하던 아저씨도 어찌할 줄을 몰라하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살아 있다는 것,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내 손을 가지고 무엇을 만질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내가 내 발을 가지고, 걸어다닐 수 있고, 뛰어다닐 수 있고...
어젠 대학부와의 축구경기가 있었지만사실 쉬고 싶었다. 하지만, 예배 시간 이후에 생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 내가 호흡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것을 감사하고 싶었다....

안타까와 할 수 있다는 것, 화를 낼 수 있다는 것, 기뻐할 수 있다는 것, 슬퍼할 수 있는 눈물이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posted by johnworld
2005. 5. 21. 14:19 As it is

-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 / 브라더 앤드류

동독과 서독이 아직 나뉘어 있었을 때, 성경이 그 철의 장막을 통과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우리 동료 여러 명이 러시아어 성경책을 가지고 동독 국경을 넘어가려다가 잡힌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많은 성경책을 잃어버렸으며, 나는 그 일로 속이 상했었다.

나는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뭐죠? 이것은 대단한 낭비가 아닌가요? 이렇게 되는 것이 당신의 뜻일 리가 없잖아요!" 나는 거듭 이에 대해 질문했으나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제를 미결 상태로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몇 달 후, 어느 날 아침 신문을 펼쳤는데, 거기서 동독 비밀 경찰인 스타시가 우리에게서 압수해 간 모든 러시아어 성경을 최근 러시아에 있는 교회에 배편으로 부쳤다는 소식을 읽게 되었다. 이만 권의 성경책! 한 권도 없어지지 않았다. 단 한 권도 낭비되지 않았다. 그 신문을 통해 해답을 보았으므로, 나는 마침내 그 문제를 끝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잠잠하실 때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한 번 이상 기도하지 않아요. 처음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들으셨으리라고 믿거든요" 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기도할 의사가 없다면 중보기도를 할 수 없다고 믿는다. 나는 기회만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뒤로 물러앉아 "하나님, 제가 기도했으니 그것으로 되었지요!" 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기도가 중요한 만큼 나는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 때까지 쉬지 않는다.

posted by johnworld
2005. 5. 21. 14:16 As it is

최근에 몸이 좋지를 않다. 오늘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왔다...-.-

역시 건강은 건강하지 않을 때 그 중요성을 아는 것 같다. 있는 것의 소중함을 그것이 없어졌을 때에야중요성을 비로소 아는 것처럼...

무엇인가 내 안에 있는 것들이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제대로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삶의 빈곤함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어느 목사님의 집엔 추석 때만 되면 교인들이 가져오는 과일로 냉장고가 꽉 찼다고 한다. 집안 식구들이 다 소화할 수 없을만큼... 그러던 어느 날, 한 권사님이 "케익"을 가져왔더란다. 그런데 목사님의 두 자녀의 반응이 시큰둥 한 것이었다. "에이, 또 케익이야?...."

아마도 누가 먼저 케익을 가져왔을 것이고, 기대하고 보았던 것이 같은 것이니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그런데 목사님은 그것이 못내 충격이었던 것 같다.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인데, 이젠 그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이 더 이상 가치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 그것을 목사님은 "악성 가난"이라고 표현했다. 가난 중에서도 아주 질이 안좋은... 즉,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무뎌졌으니, 그 사람은 부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은 아이들에게 그런 시각의 잘못됨을 알려주었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다시 그 소중함을 알 수 있을까를 놓고 가족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주변에 있는 경비 아저씨들, 그리고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국 받았던 모든 과일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며칠이 지나 다시 과일을 먹으려 하니, 그 많던 것이 하나도 없어 다시 사 먹었을 때, 그것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더라는 얘기이다.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이 많아지니, 그 가치가 떨어지는... 많음으로 누리는 풍족함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결국 혼자 누리고만 있을 때, 우리는 그런 "악성 가난"과 같은 형태의 병에 걸릴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내 삶이 빈곤하다고 느껴질 때,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이미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음에도 별스럽지 않게 대하는 나의 무료함과 나태함...

내겐 이미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 친구들, 직장, 건강... 그런데 종종 나로 하여금 그 중요함과 가치를 잃어버려 느끼지 못하고 살 때가 너무 많다. 당연스레 있는 것들로 생각하는...

이미 내게 주신 것들을 누리며 감사하며 사는 삶의 태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이 늘 매주마다 듣는 메시지 중에서 전해지는단순한 사건처럼만 들리는... 정말 내게 있어야 했고, 필요했고, 그래서 지금 그것을 소유하고 있고, 그래서 너무나도 감사한...

이미 내게 주신 것들이 너무 많다. 오늘 그것이 감사하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