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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0. 23:12 As it is
고 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 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posted by johnworld
2005. 5. 20. 23:10 As it is
고후 5:16~20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1. 이제 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크리스챤이라하면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육체대로라는 표현이 영어로는 worldy point of view 라고 되어 있었다. 세상이 보는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는 물질의 소유의 많고 적음이나, 아는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소위 말해서 가방끈), 배경의 있고 없음이나... 세상이 가진 잣대를 가지고 이제 사람들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도 점점 이런 것들을 따라서 사람들이 평가를 받고 중요한 직위를 차지하고... 하나님은 차별(difference)하지 아니하시고 구별(distinguish)하시는데, 우린 교회안에서 차별(difference)하는 세대가 되고 있다. 차별하지 아니하시고 구별하시는 하나님은 그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들보다 먼저 구별되어 있을 뿐인 것을...
어찌되었든 능력과 재주의 많고 적음이 교회안에서 중요한 것이 아님을 다시 되새긴다. 청년부 안에서도 기능을 가진 청년들이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때가 많다. 사람은 있는데, 어떤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그것을 설령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중요한 것을 해결한 new creation 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시야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던 종교지도자들이나, 오늘날 교회안에서 차별하는 우리의 세대와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을 보는 가치의 눈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2.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
아무래도 전도와 관련된 얘길할 때 많이 쓰는 얘기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니 우리도 다른 이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그 분을 소개하라는 것이다. 정말 우리의 신분은 그리스도의 사신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교회안에서 한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질 못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어제(7월20일) 다시 오해를 풀 수 있었다. 다시 화목하게 된 것이다. 물론 화목하게 되려고 하는 그 과정이 좀 아프긴 했다. 싫은 소리, 쓴 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적인 나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일단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그 과정은 내게 무척이나 쓰린 경험이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화목하게 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쓰라린 과정이 있어야 만이, 희생이 있어야지 만이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런 역할이 아니었을까? 그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지, 결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없었던들 하나님과의 화목은 너무나도 우리에게 큰 희생과 댓가를 지불하게 했을 것이다.
화목하기 위해서 내가 들여야 하는 희생과 수고와 헌신이 없이는 결코 화목을 이룰 수 없을 것이란 귀한 교훈을 하나 배우게 된 셈이다. 그것을 배우게 한 어제의 과정이 무척이나 감사하다.
posted by johnworld
2005. 5. 20. 13:42 As it is

어제 기독교 방송을 듣다가 한 진행자가 자기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하나님이 자기만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아이들도 사랑한다는 걸 배웠다는 것이다.
그 아이 하는 말
"나만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아이들도 사랑하는 걸 보니까... 하나님은 바람둥이 예요..." 그러더란다....

그 애가 바람둥이가 뭔지를 알고나 그랬던걸까? 아이의 시야로 대답한 말이긴 하지만.... 무척이나 재밌는 말이다.

내가 만일 교사였다면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을까?

하나님은 자신만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아이의 마음이.... 단지 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얘길 한걸까? 우린 때로 하나님이 특별히 나를 사랑하셔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음성을 듣는 그런 특별한 존재로 영성의 우월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이의 마음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어하는 욕심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안에 무엇인가를 더 독점하여 희소성의 가치내지는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실 수 있는 하나님...
다른 사람을 더 특별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하나님...
나보다 더...

그런 하나님을 생각하면 난 왠지 하나님으로 부터 소외된 것이란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은 정말 바쁘신 분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야 하니 말이다. 그러고보면 "요일"에 나오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러실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 분은 변함이 없으시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변함없으신 사랑... 한결 같으신 사랑... 물론 나보다 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실 수 있으시기도 하지만... 나에게 대해서는 여전하신 한결 같으신 분이란 말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할 수 없다. 독점하기엔 그 분의 사랑이 너무 많고 크고 넘친다. 아마 혼자 독차지 하면 넋을 잃고 그 사랑 다 누리기도 힘들것이다. 그럴바엔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나누어 주는 편이 훨씬 유익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걸까? 때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기대 이상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때 부담이 되기도 하는 것이...

어찌되었든 우린 그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사랑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우린 모든 인류를 사랑할 수는 없다. 그것이 신비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