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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4. 16:07 스크랩

추천 : http://blog.joins.com/dima0306/11031256

‘행복한 야만인’에게 배우는 삶



이미 많은 이들이 접했을 신간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는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부제가 ‘일리노이주립대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으로 브라질 소수종족인 피다한에 관한 이야기인데, 고백컨대 나는 이 보석 같은 책에 요즘 푹 빠졌다. 묘미는 뒷부분의 반전이다. 선교 차 이곳을 찾았던 저자 다니엘 에버렛은 30년 고민 끝에 기독교신앙을 던진다. 이유가 이렇다. “피다한 족은 풍요로운 내면을 지녔으며,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린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진리를 설파하고 삶을 바꾸도록 강제할 것인가?”

철학적 울림의 다음 발언이 압권이다. “우리는 종교와 진리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도 행복할 수 있다.”(446쪽) 유전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나오는 “신 없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명제를 꼭 닮았다. 단 논쟁적이지 않고 유쾌하다. 놀랍게도 피다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미개하다. 통과의례나 장식품, 숫자 개념도 없다. 마을 추장도 없으니 권력의 흔적조차 없는, 원시 그 자체다. 때문에 3만 년 전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그렸던 호모 사피엔스 와, 21세기 우리를 잇는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종족과의 생활 초기에 저자는 선교의 노하우를 찾으려 전전긍긍했다. 그때 누가 “저들이 결핍된 존재임을 일깨워주라”고 말했다. 그게 관건이었다. 그들은 원죄관념이 없었다! 죽음·질병 등 내일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난 채 ‘지금 여기’에만 충실할 뿐이다. 루소가 말했던 ‘행복한 야만인’일까? 여성학자 마거릿 미드의 인류학 고전『사모아의 성년』도 마침 생각난다. 미드가 관찰했던 사모아인도 원죄관념이 없었다. 단 기독교는 받아들였는데, 원죄관념을 뽑아낸 뒤 ‘사랑의 신’ ‘기쁨의 신’으로 바꿔버렸다.

어쨌거나 우리가 피다한족·사모아인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런데도 왜 그들 삶에 끌릴까? 문명과잉과 강박관념에 찌들린 탓이 아닐까? 그게 10년 전 등장한 H.호지 여사의『오래된 미래』가 지금도 열렬하게 읽히고 음미되는 이유다. 기억하실 것이다. 그 책에 나오는 미소와 함박웃음으로 가득한, 그러면서도 위엄이 넘치는 티베트 지방 라다크인의 행복한 삶 말이다. 피다한 족도 그렇다. 얼굴에 항상 큰 웃음을 머금고 사는 그들은 친밀감을 표할 때는 냉큼 다가와 상대방의 몸을 자기 손으로 만지고 비빈다.

어색할 것 같다고? 그건 쿨하게 깔끔 떠는 것을 에티켓이라고 믿어온 우리의 고정관념 아닐까? 상대방에 대한 호의 대신 의구심·두려움을 품은 채 립서비스와 시늉만으로 사는 삶 말이다. 그게 얼마나 황량한 인간세상이란 말인가! 최소한 저자는 “그런 피다한 족의 친밀감 표시에서 더 이상의 환대를 상상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데,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 지금 반문명의 메시지는 생태주의·아나키즘·페미니즘과 연결돼 각광받으며, 관련 책도 부지기수다. 참고로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는 무슨 뜻일까. 밀림에 사는 그들의 귀여운 저녁인사말이란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posted by johnworld
2010. 4. 23. 00:09 스크랩

출처 : http://blog.naver.com/whdydtnr71?Redirect=Log&logNo=140097518316

대전사람들-알멋공동체 하재호 목사

가족의 의미를 새로 쓰는 사랑의 공동체

“알멋공동체는 자활과 자립을 목표로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알멋의 '알'은 아름답다의 원형이고 멋은 자유와 조화 평화를 의미합니다. 저희는 정부의 지원을 배제하고 우리의 힘으로 공동체를 꾸려나갑니다. 우리의 형제는 일이천만원의 카드 빛으로 가정이 깨지고 거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던 우리들입니다.”

갈 곳 없는 노숙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알멋공동체 하재호목사(54)의 말이다. 이 사회는 무한한 다양성속에서 각각의 개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 나은 사람도 있고 좀 뒤처진 사람도 있다. 물론 잘 살고 못 사는 것의 첫째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 구조적 모순 속에서 노숙자의 삶으로 내쫓겨진 사람들. 이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품에 끓어 앉은 사람이 알멋공동체의 하재호 목사.

신학을 전공한 그는 젊은 시절 목회자의 길을 걷지 않고 사람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였다. 죽어가는 암환자나 전신마비환자를 목욕시키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자의 삶의 이어가던 중 우연하게 알멋공동체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낮에는 봉사활동으로,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 밤 2시에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에 대전역 노숙자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한밤중에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먹을거리를 사다주는 과정에서 방 좀 얻어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몇몇 노숙자와의 우연한 인연으로 어렵게 방 얻을 돈을 마련하게 된 것이 지금의 알멋공동체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지요. 처음에는 한 두 사람을 돌봐주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제 이야기를 전해들은 노숙인 형제들이 한꺼번에 저를 찾아 왔더라구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저를 찾아온 사람들을 내칠 수도 없고 해서 아는 분이 저에게 빌려준 건물을 노숙인 형제들의 쉼터로 내 줬어요”

이렇게 하목사와 노숙인들의 동거가 시작되었지만 그 짧은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20여명이나 되는 노숙인들이 다시 거리로 나가야 될 상황에 봉착하게된 것이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말로 표현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현실의 벽. 그 순간에 선창교회 김혁 목사님의 도움으로 알멋 공동체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주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그 순간 그는 “교회를 통하여 알멋공동체가 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는 알멋공동체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3년 반이란 시간동안 대리운전을 해가면서 알멋공동체의 가장역할을 도맡아왔다. 다행이 지금은 알멋공동체 형제들과 함께 알멋 자원이라는 고물상을 하면서 대리운전을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몸을 너무 혹사한 탓에 오후 서너 시가 되면 몸이 아프고 머리가 띵한 것이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 정도라고. 그래서 평생 공장 일에 가장 노릇만 시킨 아내에게 죽으면 시신은 병원에 기증하고 알멋공동체가 잘 될 수 있도록 더욱 힘써 달라는 유언을 써 두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의도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알멋공동체를 꾸린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문의 : 528-9932

조용숙 리포터 whdydtnr71@naver.com

posted by johnworld
2010. 3. 25. 22:31 스크랩

출처 :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13182&section=sc5&section2=

숭실대 김회권 교수 파워인터뷰.."내 명성에는 거품이 너무 많다"

이범진
7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2001년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교수로, 목회자로, 각종 행사에 주강사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이었다. 한 달에 14만 원을 받던 ESF(한국기독대학인회)간사 시절의 가난한 영성을 담은 그의 울부짖음은, 7년간 한국 교회에 울려 퍼졌다. 숭실대 김회권 교수 이야기다.

▲ 숭실대 김회권 교수는 2001년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꿈꾸는터 윤동혁
기독교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타 학과 학생들에게도 인기 있는 유명 강사다. 그중에서도 ‘구약학 이해’는 가장 빨리 마감되는 과목 중의 하나. 딱딱한 구약학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학생들이 모여드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그의 강의에는 구약시대 울부짖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구약 선지자들이 오늘의 교회와 사회를 향해 울부짖는다고 말한다.

김회권 교수는 수업시간에 “강남의 대형 교회에 가서, ‘땅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외치는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구약의 옛 선지자들처럼 말이다.

그는 지난 7년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뉴스파워>는 16일 오후 3시 파주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7년과 더불어 그의 오랜 신앙여정을 물었다.


“나의 명성에는 거품이 너무 많다.”

김 교수의 첫 번째 말이었다.

“나의 명성에는 거품이 너무 많습니다.”
김 교수는 공식적인 인터뷰가 처음이라면서, 방송과 신문에 나오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가 거품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가 좁기 때문에, 조금만 활동을 해도 주목을 받고 부풀려진다는 것.

이어 김 교수는 “내가 학벌이 있고, 대학교수라서 한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할 조건을 갖췄기 때문에 생긴 명성”이라며 지난 7년간의 활동에는 거품이 많았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김 교수의 이런 누룩을 돌아보게 한 장본인은 바로 그의 가족들이다.

“저는 아들, 딸에게 존경받고 있지 못합니다. 내 아내는 내가 허풍이 심하다고 말합니다.”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둘째 아이가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책을 쓰고 활동해도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네.”라고 일침을 가한 것.

이에 김 교수는 앞으로 “자녀들에게 존경받기 위해서 더 분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높아진 명성은 ‘세상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아들의 지적에 거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신학자가 되도록 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20대 시절의 가난한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회권 교수는 한때 14만 원의 월수입으로 학원 선교를 했다. 당시 그는 라면과 만두로 끼니를 때웠다. 대학교수가 된 지금의 생활과는 다른 모습이다. 어떻게 그때와 같은 일관된 신학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때도 나는 걸었고, 지금도 걷습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합니다.”

그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걸어다닌다. 그리고 등산을 가장 좋아한단다. 가난한 복음전도사 시절, 관악산에서 승냥이 울음소리가 나는 칼바람을 맞으며, 연주암 주변 바위 위에서 기도하던 때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김 교수는 “내가 산을 타지 않으면 그 시절로 돌아가기가 힘들다.”며 “20대 시절의 가난한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채찍질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이 필요하다”

김회권 교수가 청년들을 아끼는 이유는,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 앞에 몸서리친 기억 때문이다. 청년이 희생당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사에 번제물인 청년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한 것. 그는 ‘88만 원 세대’가 되어버린 청년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효율성 추구는 인간의 값어치를 아주 저하시키는 경제학”이라고 지적한 김 교수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면서 GDP를 늘리려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GDP개념 안에 인간의 값어치와 존중감을 고취시키는 무형의 정신적 에너지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포도원의 주인처럼 오후 5시에 일을 시켜서, 고용을 극대화해 인간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이라며, 신자유주의 경제를 비판했다.

“인간의 최소 필요를 채우지 못한 채, 어떤 사람들은 굶주려 죽고 어떤 사람은 연봉을 몇십억, 몇백억 받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폭력이다. …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자들이 테러리스트다. 진정한 테러리스트는 월스트리트에 있다.”


▲ 김 교수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면서 GDP를 늘리려는 것은 모순”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효율성 추구를 비판했다. © 꿈꾸는터 윤동혁
“인간성 통찰로 새로운 일자리 찾아라”

이런 상황에서 김 교수는 청년들에게 “넥타이 매고 4대 보험이 보장되는 곳에만 가지 말고, 인간의 기본적 필요에 응답하는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라”고 훈수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연봉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

그는 청년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으려면 ‘신문읽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문을 읽어야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숨어있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교수는 동네축구전국연맹, 탐방기획교육단체 등의 실제적인 예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청년들이 개인주의화 되었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개인주의화 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많지는 않지만, 역사의 대의명분 앞에 남아있는 기본정족수의 청년들은 항상 있어왔다는 것. 그리고 “나는 한 번도 이 신념에 배반당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개인주의화 되었다면 촛불집회 때 그렇게 많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통일은 거룩한 상호흡수 통일로”

김회권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술, 담배, 동성애, 낙태, 이스라엘의 침공, 한국교회 신뢰도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남북통일을 이야기할 때 가장 빛났다. 대학 시절부터 남산의 통일원에 가서 노동신문을 볼 정도였다. 이러한 열정은 독재정권, 인권유린 등의 문제가 통일이 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는 확신 때문. 그의 전공이 이사야가 된 이유도, 이사야가 민족화해와 통일의 신학자라는 게 크게 작용했다.

김 교수는 “거룩한 흡수통일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흡수하는 통일”이라며 “남한과 북한이 둘 다 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도덕적 선악을 떠나 시대착오적이고 비효율적인 주체사상과 남한 내 조갑제 같은 이들의 호전적 반공주의가 모두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

거룩한 상호흡수 통일을 말한 사람이 바로 이사야다. 이사야는 ‘남유다왕이 다윗왕처럼 의로운 왕이 되어야 북동포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이사야 9장이 이런 사상을 담고 있다.

이에 그는 이념갈등을 보이는 양쪽의 아픔을 모두 보듬는 것이, 통일을 위한 한국 교회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김일성, 김정일에게 갖는 사람들의 반감과 원한들을, 느긋하게 남의 일 보듯이 학문적으로 다루면서 그들을 ‘수구꼴통’이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그러나 공산당이라고 몰려서 오해받아 죽었던 인혁당 같은 사람들의 영혼을 보듬어줘야 하고, 껴안아야 한다.”


“분단문제, 숙명론에 맡기지 말고 능동적 분투자가 될 것”


한편 김 교수는 최근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물었을 때,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묘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는 계속 대화를 주창하면서 행동은 대화를 파기하고 있다.”고 비판한 그는 “나쁜 놈의 어리석은 행동이 가끔은 우발적으로 선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이어 김 교수는 “무능하고 나쁜 정책이, 하나님 은혜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청년들에게 “우리 민족사의 분단문제를 숙명론에 맡기지 말라”며 “통일하려는 능동적 분투자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힘을 모아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난관에서도 역사적 기억력을 갖고, 새로 전개될 역사의 예언자적 투신을 하라”고 당부했다.



안식년 떠나는 김회권 교수

김회권 교수는 다음 달 말, 독일로 안식년을 떠난다. 1년간 독일 튀빙겐 대학의 에버하르트 불룸 교수의 초청으로, 역사적 이사야의 재구성 부분을 연구한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안식년은 쉼이라기보다,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

1년 후에 ‘거품 빠진 김회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책을 쓰고 활동해도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네.”라는 아들의 촌철살인 같은 지적을, 가슴에 안고 떠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진보(?)’와 ‘보수(?)’에서 두루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통합할 수 있는 신학자라고까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가능성이 있죠. 제가 학부 때 전공을 인문학을 했습니다. 문학, 역사, 철학, 언어, 종교학, 사회과학, 철학을 공부함으로 인문학적 상상력이 넘치는 훈련을 받았죠. 인문학적 상상력의 핵심은 상당히 변증법적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형식논리학적인 경직성을 뛰어넘는 유연성이 있습니다.

제가 보수, 진보로 쉽게 분류할 수 없는 경계 넘나듦이 쉬운 이유는 인문학적 소양의 훈련 결과라고 봅니다. 인문학적 소양의 특징은 극과 극 사이에서 소통을 구축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소통학입니다. 말과 글을 통한 소통학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의 핵심은 소통능력의 창출에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점에서 진보와 보수 두 영역 모두에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문학적 연마와 훈련의 결과라고 봅니다.

신학적인 사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해방신학에서도 배우고,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에서도 배웁니다. 이 양자 사이의 다름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에서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서도 접점이 있을 수 있고, 항상 인간을 기쁘게 만들고, 인간의 상상력에게 가능한, 어떤 대안을 제시하게 만드는 접점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오해를 받거나, 힘든 부분은요?

오해받은 대표적인 결과는, <청년설교>를 읽고, 강남의 모 교회 장로님이 좌익, 좌편향 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들었고요. 그리고 타종교에 대해서 지나치게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종교 다원주의적이라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스탠리 존스의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를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해는 진보 쪽이 아니라, 주로 수구적 자폐적 보수주의자들이 합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담론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래도 나는 그분들을 위해서 그런 오해에 대한 응답을 해주고 싶습니다.


<복음과 상황>의 산파 역할을 하셨다. 그리고 올해 ‘발행인’이 되셨다. 그 의미와 목표는?

다른 방식의 발전을 원합니다. 기존 월간지 잡지의 <복음과 상황>은 한 단계 발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창작과 비평>이나 <녹색평론사>처럼 계간지, 격월간지로 가서, 중심 진지한 담론을 실어내는 글이 되어야지, 여러 가지 신변잡기류의 글들이 주를 이루는 잡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한 시대의 중심담론을 구성하는, 또는 핵심담론을 구성하는 잡지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복음과 상황>은 현재 복음적 신앙을 가진 청년세대들에게 읽히는 유일한 잡지로서 18년째 유지되어 오고 있는 역사적 잡지임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독청년들에게 창조적인 생각거리 혹은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공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복음과 상황>을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 사명감 때문에 부족하지만 발행인직을 맡았습니다.


귀국 후 왕성한 활동을 하셨다. 내년에 안식년을 떠나시는데 자평하자면?

나의 명성에는 거품이 많다고 봅니다. 몇 가지 조건 때문에 한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할 조건을 갖췄기 때문에 아마도 거품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단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충분한 존경을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의 복음적인 종교 열정을 충분히 수긍하지 않습니다.

내 딸은 20대에는 아빠가 말하는 그 반(?)세속적인 구원을 받기 싫다고 말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숭실대생만큼 존경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아들, 딸에게 존경받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 아내는 나의 비전과 복음운동 안에 허풍이 들어 있다고 늘 말하며 헛된 명성을 경계하라고 충고해 줍니다. 그래서 자평하자면 허명의 거품을 빼야 하고, 내 아들 딸로부터 존경받도록 엄청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기 싫어하는 이유도 거품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언론 방송 등에서 출연해달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 이유는 갔다 오면 거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언론에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는 것이 <뉴스파워>가 처음입니다. 거품이 생기지 않을 수 있는 다소 안전한 언론이라고 생각하고 인터뷰에 응한 것입니다.


2월에 안식년을 떠나신다. 어디로 어떤 공부를 목으로 가시나?

독일 남부의 튀빙겐 대학으로 갑니다. 그곳에서는 박사과정에서 다루던 이사야 신학 1-39장, 40-66장의 연결과정을 공부하며 동시에 역사적 이사야의 재구성 부분을 연구할 것입니다. 이 부분을 독일 튀빙겐 대학의 이사야를 전공하시는 에버하르트 블룸 교수가 저를 초청해서, 그분과 함께 공동연구를 하게 됩니다. 그곳에 다녀와서는 이사야 40-66장 주석을 쓸 생각입니다.


청년 사역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교수님의 청년 시절은 어땠는지?

청년 사역의 관심이 많은 이유는, 내가 청년 시절에 예수님을 정식으로 영접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년 시절이 지적인 호기심, 영적인 욕구가 가장 왕성한 때이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접근성이 큽니다. 청년 때는 아직까지 어떤 이해관계 때문에 진리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지 않습니까? 청년은 결단만 바로 하면 진리를 영접할 수 있는 때입니다. 내가 청년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할 때에, 가장 고상한 도덕성과 영성을 청년 때에 경험했기 때문에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청년 때에 도덕적인 최고 지향점을 경험해봐야만 나중에 50-60대가 되어서도 복원력이 생깁니다. 청년 시절에 감동을 많이 주고, 그들을 도덕적 영봉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나중에 타락하더라도, 청년 때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타락하는 것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락하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청년 시절은 나중에 순수성이 퇴색된다고 하더라도, 청년 시절의 도덕이상주의와 역사변혁에 대한 적극적 태도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청년 사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또 80년 광주 항쟁 때문에, 내가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 앞에 몸서리치면서, 청년이 희생당하고, 분신하고, 할복하고, 구속당하는 것을 보면서 청년이야말로 이 민족사의 번제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민족사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당한 청년들에게, 내가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들의 역사의 중심 주체로 서도록 밑거름이 되겠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11년 6개월 동안, 청년복음화 운동에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14만 원을 받았고, 1994년에는 91만 원을 받았습니다. 88만 원 세대 이하의 월급으로 생활했는데 영적으로 풍성하고 신비로운 연단과 훈련을 숱하게 받았고 또한 하나님 나라 신학의 중심골격을 그 기간에 거의 형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학공부는 늦게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ESF간사로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1988년에 정식으로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학원선교를 1983~8년까지 하고, 그 5,6년 동안 엄청난 청년 복음화 운동에 진력하고 나서 공부의 필요성이 가장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ESF 간사 시절 야성을 많이 키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14만 원 받으면서 만두와 라면, 찐빵을 먹으면서, 몸무게가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앞면 얼굴로 긴 머리 휘날리면서..(웃음)., 그렇게 몸이 날렵했는데, 지금은 좀 중후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가난은 내게 비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를 의미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의도적으로 가난하게 살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의 풍요가 엄청나게 파도 쳐왔습니다. 가난해야만 사람이 됩니다. 지금 젊은 날 부자가 되면 영적 풍요를 경험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이 세상의 인간의 기본적 필요에 응답하는 통찰력이야말로 직업 창출의 지름길입니다" ©꿈꾸는터 윤동혁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부와 명예를..?

부는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명예는 얻었는데 그것은 거품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명예와 정면대결하려고 합니다. 20대 시절의 가난한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매일 탁구 치면서, 등산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등산입니다. 산을 오르면서 걸어 다니면서 생각하고 기도하고 탄식하고 노래합니다. 내가 산을 타지 않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기가 힘듭니다. 내가 걷는 이유는 나를 겸손하게 단련하기 위함입니다, 그때도 나는 걸었고 지금도 걷습니다. 그때도 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합니다.


신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비결인가요?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는 확신입니다. 내가 선포하는 메시지나 신학적 진술들이 주류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내 신학이나 메시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심이 됩니다. 내가 존경하고 신뢰할만한 순수하고 멋진 영혼들이 대체로 나의 신학적 방향에 지지를 보여줍니다. 이 신학은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들을 돕는 신학이구나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학의 일관성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성서학/신학자/목회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인문, 사회과학 독서를 100권 정도 읽어야 합니다. 이 독서훈련이야말로 신학의 기본기를 다져준다고 봅니다. 특히 성서학공부는 언어를 잘해야 합니다. 외국어를 잘해야 합니다. 낯선 것에 대한 감미로운 흥미가 유발되는 사람이 성서학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을 ‘88만 원 세대’라고 부른다. 기독청년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2,3차 산업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인건비를 절감하려고 합니다. 기업체는 고용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도,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 고용 대신에 비자금을 구축하거나, 다른 투자처를 확보하려고 합니다. 사람을 고용해서 얻는 생산성보다 계량화한 현금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더 우수한 생산성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 자체가 생산성이라고 봅니다. 사람을 고용해서 살림살이를 안정시키는 그 자체를 부라고 봅니다. 이 가치를 현대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계량화시키지 못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용했는가, 즉 행복을 창출하는 것이 국부(國富)입니다. 안정된 살림살이를 책임져 주는 것이 국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가족에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이 정신적 가치를 계량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산성을 계산하는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그래서 고용을 최대한 늘리는, 인간의 값어치를 높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고취시키는 경제만이 참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한 경제입니다.

존 러스킨이 쓴 <이제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참된 경제학은 사람의 존엄성과 도덕성을 표현하는 활동입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려고 하는, 고용을 극대화하려는 착한 주인이 하나님 나라 경제학이죠. 지금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효율성 추구는요, 인간의 값어치를 아주 저하시키는 경제학입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면서 GDP를 늘리려는 것은 모순입니다. GDP 개념 안에 인간의 값어치와 존중감을 고취시키는 무형의 정신적 에너지가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런 경제학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시경제학이니 거시경제학이니, 케인즈와 하이에크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 경제학은 뭡니까? 포도원 주인처럼 오후 5시에 일을 시켜서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필요에 응답하는, 인간의 최소 필요에 공평하게 응답하고 나서 개인차를 두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최소 필요를 채우지 못한 채, 어떤 사람들은 굶주려 죽고 어떤 사람은 연봉을 몇십억 몇백억 받는 것은, 경제도 아니고 폭력입니다. 테러입니다. 진정한 테러리스트는 월스트리트에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자들이 테러리스트입니다. 그럼 누가 어떻게 테러를 가했습니까? 달러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그 폐허가 된 집에 테러를 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조적 테러입니다. 구조적 테러는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그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20대를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테러를 당하여서 일자리를 갖지 못한 채 88만 원 세대가 됩니다.


청년들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 나가야 할까요?

청년들이 신문을 정확하게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좌절하지 말고, 숨어있는 일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숨어있는 일자리는 신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 인간에게 필요한 경제활동의 여지가 얼마든지 나옵니다. 우리는 넥타이 매고 4대 보험이 보장되는 곳에만 가려고 하지 말고, 정말로 알바수준의 일이라도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활동은 경제활동이고 반드시 보상이 따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너무나 할 일이 많습니다. 직업군으로 계량화하지 못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약 6만 개의 등록 직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10만 개의 미등록직업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습니까?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는 사람, 가난한 학생들을 공부 도우려는 사람, 우리는 4년제 대학만 나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신문을 읽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인간의 기본적 필요에 응답하는 통찰력이야말로 직업 창출의 지름길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요즘 사회적 일자리라고도 하지요. 제가 보기에는 엄청 일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직업을 창출할 때는 연봉은 생각하지 말고, 최소한의 생활만 되면 됩니다. 한두 끼만 먹으면 됩니다. 저도 예전에 14만 원으로 살았습니다. 걸어 다니면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놀토 때마다 동네 축구리그를 결성해서, 배구리그 등 운동리그를 결성해서 각 동마다 연맹을 만드세요. 어린아이, 소녀, 아줌마, 아저씨 리그 등을 만드세요. 그리고 지부 총무나 회장에 취임하십시오. 엄연한 직장입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이 잔디구장 몇 개 지어놓고, 토요일마다 축구팀을 만들고, 그 각 코치를 양성하여 운영하게 합니다. 가족과 학부형도 나옵니다. 그리고 악기를 하는 사람들과 지역 밴드를 조직해서, 토요일마다 악기를 가르쳐서 음악회를 열고 싶습니다. 쿠키도 구워주고요. 바자회도 하고 싶고요. 각 대학생 영화연극 동아리가 연극단을 조직하여 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입니다.

또한 농촌과 교회에 직거래 장터를 열어주겠습니다. 컴퓨터 인터넷으로 책 편집을 도와주고요. 이런 것들은 신문을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해외 아이들의 백두산 탐방을 기획하는 단체를 만듭니다. 훈련과 교육을 겸한 단체입니다. 여행사가 아닌 교육단체입니다. 사무실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만나본 청년들은 개인주의적인가요?

청년들이 개인주의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항상 기본정족수만큼은 순수한 청년은 남아있습니다. 역사의 대의명분에 관심 갖고 있는 사람은 어느 시대나 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이 신념에 배반당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개인주의화 되었다면 촛불집회에 그렇게 많이 나왔겠습니까? 얼마든지 광장을 열어주면 나올 사람들입니다.


기독 청년들에게 술, 담배 문제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제가 볼 때, 술, 담배를 현재 하고 있는 사람에게 “너 술, 담배 하면 안 된다”는 윤리적인 접근은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술, 담배가 치명적인 죄는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폐해를 끼치는 죄악이라기보다는,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식으로 보거든요. 술, 담배를 하면서 독립적 개인이 되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술, 담배 안에는 단순히 방종스럽게 살겠다는 의지보다는 어른이 되었다는 자기 확인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과도하게 하지 말고, 건강상의 이유로 자제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 누가 술, 담배를 한다고 엄청난 죄인 것처럼 말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지난해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법 개정에도 기독교가 나서서, 결국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현재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을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로 존중하면서 만나야 합니다. 다만 진정한 동성애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동성끼리 성적인 스파크는 안 일어납니다. 생물학적으로 동성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동성이 아닙니다. 반드시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변형된 이성애입니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우리가 옳으니까,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회정책에 관여하거나, 연금을 타내거나, 세금혜택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봅니다. 용인받는 것과 그것이 옳으니까 하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동성애자들이 정치적 결사체를 만들어 권익옹호운동을 벌이려는 것은 마치 전국간통자협회에서 간통을 정당화하려는 것과 유사합니다.


낙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경우에라도 낙태는 안 된다라기 보다는, 산모의 정신적, 육체적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출생이 될 때는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예를 들어, 성폭행당한 사람이 강도의 아이를 낳아야 합니까? 성행위나 잉태를 절대화하면 낳아야 합니다. 잉태를 절대화하면 낳아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성폭행당한 여인이 아이를 낙태하는 것은, 아이를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대한의 장치라고 봅니다. 산모의 정신적 생명도 잉태된 아이의 생명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아이를 낳아놓고 일생동안 어떻게 할 겁니까? 산모의 정신적 육체적 생명이 아이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산모에게 기득권이 있다고 봅니다.


청년들에게는 책을 고르는 문화가 없습니다. 책을 어떻게 선정하여 읽습니까?

중고등학교 때는 주로 선생님들이 추천한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기독교사상>이나 <한겨레>, <경향신문>, 중앙일간지에 실린 서평을 보고 삽니다. 그리고 내 전공과 관련된 것은, 고전적인 학자들의 글을 보면 알고요.

첫째, 인적인 접촉을 통해서, 즉 학자나 멘토, 권위자를 통해서 읽습니다. 둘째는 신문지상이나 잡지를 통해서 봅니다. 셋째는 학계나 문학에서 정통으로 안정된 권위를 얻은 고전적인 책들을 읽습니다. 고전적인 책들은 늘 읽으려고 애를 씁니다. 기본적으로 소설, 역사, 문화에 관한 책은 읽어보려고 노력합니다.


숭실대 기독교학과에서 청년들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강의가 가장 빨리 마감되고, 우수교수로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육하는 데 있어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 공부가 재미있는 일인 것을 처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교재가 어려웠다는 학생도 있습니다.

공부에 대한 사랑, 책에 대한 사랑, 지식추구에 대한 사랑, 이것이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것. 공부하는 활동을 종교적 성사의 개념으로 격상시키면서 책 읽는 행위의 보편성, 즉 연구하는 사람이 더 공익에 이바지할 가능성이 많다고 가르칩니다. 공부 또는 교육의 보편적 유익을 가르치고, 그 열정을 회복시키고자 역점을 둡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격려하려고 애를 씁니다.


청년 때부터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글을 많이 써오셨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 어떤 이유에선지?

내가 대학교 4년 내내, 우리 민족의 분단문제는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진지한 대학생의 관심사였지요.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국토 순례를 했습니다. 또 1학년 여름 방학 때는 진해에서 백령도까지 6박 7일 동안 돌았습니다. 그다음에 우리나라 산업시설을 다 돌아봤습니다. 돌아보면서 우리나라의 분단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독재의 문제, 인권유린의 문제, 고도의 자본주의적인 노동 효율성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분단문제를 창조적으로 평화롭게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 민족사의 발전에 큰 방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그때부터 남산에 있는 통일원에 가서 노동신문을 허락받고 볼 정도였습니다. 처음부터 관심이 많았던 거지요.


모 단체에서 ‘개성공단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님의 생각은?

개성공단 철수는 동의하기 힘든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개성공단은 ‘평화공단’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곳의 여공들이 다 여군이고, 그 돈이 바로 북한군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많습니다. 북한은 군정 일체이기 때문에요. 그렇지만 인적접촉의 중요성을 확보하고, 관광을 하면서 북한과 남한 사이의 이질성을 줄이는 것은 북한이 만일 유사시에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는 하나의 지렛대가 될 것입니다.

이번에 도쿄 도지사였던 일본의 이시하라가 망언을 했습니다. ‘북한의 운명은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가장 낫다’였습니다. 이것은 중국 사람들도 생각할 수 있고, 북한의 일부 사람들도 남한 쪽보다는 중국 쪽으로 통일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흡수통일이 낫다고 봅니다. 이것은 북한 동포들의 존엄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는 통일입니다. 즉, 긴 평화우호적인 공존체제를 거치고, 아주 무르익었을 때 정치적 통합을 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흡수통일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흡수하는 통일입니다. 상호침투적인 흡수통일로 남한과 북한이 둘 다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북한체제가 매우 경직되어 있다고 봅니다. 주체사상은 도덕적 선악을 떠나서 매우 비효율적이고 시대착오적입니다. 남한 사회의 자유정신, 창의 정신, 개척정신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북한의 교조적인 주체사상이 없어진다면, 북한과 남한의 공존체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 내에서도 일부, 조갑제 같은 경우 “금수산 궁전에 탱크를 틀어서 정복하기 전까지 통일은 없다”는 호전적 반공주의가 우리 민족사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통일은 민족사의 기억에만 호소하는 그런 통일운동이 되면 안 되고, 보편적인 가치의 구축을 위한 통일입니다"©꿈꾸는터 윤동혁

미국 대통령으로 오바마가 당선됐다.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제가 이번에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는데요. 이것은 오바마 자신의 정책에서 많은 것을 양보했음을 의미합니다. 오바마가 자신의 정권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서 구민주당 인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오바마보다 더 신중한 입장입니다. 내가 볼 때, 힐러리 클린턴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한 큰 변화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취하는 대외정책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미국 사회 자체가,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필요가 여전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정책적 운신은 크지 않습니다.

6자회담을 지지하면서, 엄밀한 양자 회담을 지지했던 부시2기나 말기 정책과 유사할 거라고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힐러리 클린턴이 벌써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결, 그리고 할 수 있으면 관계 정상화’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시의 입장과 같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아닙니다. 일괄타결입니다. 관계정상화를 하면 북핵 포기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북한 쪽이 제가 보기에는 훨씬 맞는 것입니다. 신뢰만 할 수 있다면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대북통로가 막혔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고, 확실히 접촉하는 횟수도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말과 행동은 전혀 다릅니다. 이명박 정부는 계속 대화를 주창합니다. 한 번도 대화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는 행동은 대화를 파기하거나, 대화 분위기를 결정적으로 파기하는 쪽으로 갑니다. 이명박에 있어서 대화는, 북한이 이명박에게 한 수 꺾고 들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명박의 대북정책이 역설적으로 아주 우스운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저렇게 완악한 놈도 다 있구나!”하면서, 북한쪽의 정책적 운신을 다르게 틀 지울 수도 있습니다. 항상 나쁜 놈이 나쁜 결과만 가져오진 않습니다. 나쁜 놈의 어리석은 행동이 가끔은 예외적으로 우발적으로 선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명박의 저 어리석고 무능한 나쁜 정책이 하나님 은혜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기대합니다.


친북좌파, 빨갱이가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말도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이념적 갈등이 해소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한국 교회의 역할은?

한국 교회 안에 체험적 반공주의라고 불리는, 공산당에 대한 상처,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분들의 하는 말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북한에 증오심을 갖고, 북한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한이 서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그냥 중립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도 몹시, 대항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역사적 산물로서, 그들의 상처를 쓰다듬는 역사적 도량 안에서 그들을 대화의 바탕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남남갈등이라고 하지만, 북한에 대한 반북적 생각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탈북자, 납북자 가족 등 이런 사람들은 이가 갈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김일성, 김정일에게 갖는 그런 모세혈관같이 드러나는 반감과 원한들을 학문적으로 느긋하게 남의 일 보듯이 다루는 것, 그래서 그들을 ‘수구꼴통’이라고 말한다면 곤란합니다. 그들도 다듬고, 보듬어줘야 하고, 우리가 경청해줘야 할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일각에서 인권에 대해서 말할 때 역할 분담 차원에서 봅니다. 정부는 대북 협상테이블에서 인권이라는 말을 하면 찬물을 끼얹으니까 못하더라도, 반북적 단체가 인권을 외치는 것은 역할분담차원에서 봐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공산당이라고 몰려서 오해받아서 죽었던 인혁당 같은 사람들의 영혼을 보듬어줘야 하고, 이들도 껴안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쪽을 다 생각하는, 심장을 여러 개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아마 그러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에도 통일을 위해 나선, 선지자가 있었나요? 한국 교회는 그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논문을 서너 편 썼습니다. 이사야가 바로 정확하게 민족 화해와 통합의 신학자입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신학자로, 북이스라엘이 망했을 때, 북이스라엘 왕국이 4/5인구와 영토를 가졌지요. 12지파 중에서 10지파가 북왕국이었으니까요. 그 북왕국이 끝나고 나서, 북왕국의 남은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초대하려고 했고, 히스기야의 품에서 품으려고 했고, 남유다 왕국이 훨씬 더 멋진 나라가 되어야 북동포를 품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요. 제가 말한 상호침투적 흡수통일입니다.

우리가 북한동포를 흡수하기 위해서, 육체노동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육체노동자를 존중하다 보면 인건비가 높아지기 때문에, 현금으로 계량화된 경제발전을 더딥니다. 그러나 인건비로 가서, 그 사람들의 살림이 안정되고, 가정에 웃음꽃이 만발하면 그것이 바로 경제적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국민총웃음량, 국민총노래량, 국민총감동량, 등의 총합적 경제학이 모자랍니다.

육체노동자를 존중하려면 고용을 확대해야 됩니다. 월급 적게 받으면서, 이번에 금속노조가 말한 것처럼, 일자리 나누기 운동이 그것입니다. 우리 해고하지 말고 연봉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연봉 1000만 원씩 깎고 교수 더 많이 뽑자고 해야 합니다. 나는 지지합니다. 조금 덜 쓰면 됩니다. 한 교수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거룩한 상호흡수통일을 하려면 우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사야가 이런 흡수통일을 말했습니다. 정확한 거룩한 상호흡수통일을 말한 사람이 이사야입니다.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을 통하여, 남유다왕이 다윗왕처럼 의로운 왕이 되어야 북동포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이사야 9장이 이런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는 다문화 사회에서, 민족성을 강조하면서 통일운동을 한다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통일은 민족주의적 가치로 가면 안 됩니다. 통일은 보편적 가치 위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민족사적 위에 있는 통일과 보편적 가치 위에 있는 통일이 약간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백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살게 되는데, 과거 무구한 반만년 역사만으로 통일을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럼 통일은 뭘까요? 통일은 공동체적이면서도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지점에 건설되는 사회적 통일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개인의 자유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유재산 인정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의 정도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그런 무제한적이고 신성 불가침적인 사유재산이 되면 안 되겠지요.

그래서 통일은 민족사의 기억에만 호소하는 그런 통일운동이 되면 안 되고, 보편적인 가치의 구축을 위한 통일입니다. 그런데 남한과 북한은 분단된 현실 때문에 그 보편적 가치의 구축이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통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통일운동을 해야겠지요. 왜냐하면 단일민족이라도 통일 못 하고 있는 나라가 훨씬 많습니다.

단일민족이라서 통일된 나라가 10%도 안 됩니다. 통일 못 하고 있는 나라가 90% 정도 될 겁니다. 쿠르드족 보세요. 2,500만 명이 넘지만 통일되지 못합니다. 유대인들도 다 세계로 흩어져 있습니다. 독일 사람이 얼마나 많이 폴란드에 삽니까? 단일민족이라도 한 나라에 못 삽니다. 그래서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한 나라에 살아야 한다는 것은 역사적 현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구한 역사에 기대는 것이 대중적 설득력에 좋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편적 가치, 하나님 나라의 가치, 개인의 생활과 공동체의 삶의 평안 조건을 다 만족하는 접점에서 통일운동을 하고 통일남북을 건설하는 거지요. 그러면 외국인도 소속되고 싶은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 나라, 멋진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숙명론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계획을 짜면 하나님께서 힘도 주기고 지혜도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신학교에 가신다면, 어떤 전공을 공부하고 싶으신지?

전 세계 만민에게 통할 수 있는 기독교, 이 기독교 복음의 진리성이 어떻게 옹호될 수 있는가, 기독교가 진짜 내놓고 다른 사람에게 믿으라고 할 만큼 멋진 그런 복음인가, 어떤 점에서 기독교가 만인에게 호소력이 있고, 우리 모두가 따라가야 할 진리임을 입증하는 그런 공부를 하고 싶다. 변증법적인 거요. 기독교 진리의 가치를 현대인으로 풀어서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침공이 정당방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16일) 3시에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성명서 발표했습니다. 구약학회 들어갔습니다. 평화누리 등 내가 소속한 곳 전부 다 사인했습니다.

과잉방어죠. 오버 디펜스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번에 하마스라는 폭력, 강성 정치세력을 뿌리 뽑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팔레스타인이 제2의 이스라엘이 되어갑니다. 이스라엘은 엄청난 소수파에서 야성을 키워서 강성이 됐습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하마스 등의 무력단체들을 박멸하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실패합니다. 폭력으로 한 단지의 민족성이 끊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엘오라는 나라가 얼마나 아랍연방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느냐 입니다. 레바논과 시리아밖에 지지를 안 해줍니다. 그래서, 그래서는 안 되지만 피엘오가 순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분간은 이스라엘의 과잉폭력, 과잉폭격이 효력이 있습니다. 당분간은. 그러나 그 어린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심어준 그 영원한 적개심과 이스라엘에 대한 대항정신은 엄청난 뇌관으로 폭발할 때가 옵니다.

그것은 마치 미국이 이라크에 심어준 핵폭탄과 같습니다. 부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엄청난 안티-아메리칸 테러리스트 씨앗을 뿌린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엄청난 빈 라덴 복제인간을 만들어 놨습니다.

이스라엘에게도 엄청난 손해입니다. 하마스를 공격해서 당분간은 제압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 삶 전체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자유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일종의 군사독재국가입니다.


기억에 남는 후배나 제자가 있는지?

관악 이에스에프 출신의 이강학 목사, 사랑누리교회 김정태 목사, 숭실대 양진일 목사, 미국 에모리에 가있는 허신욱 목사, 장신대 혹은 목회하면서 만났던 후배입니다. 나보다 열 살 어린 사람들이지만, 앞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으신지? 그런 사람으로 계속 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하나님께서 나를 목회자적 학자, 학자적 목회자로서 보시기를 기대합니다.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한국 사회가 아주 작기 때문에 활동을 할수록 명성이라는 게 쌓입니다. 그런데 명성의 거품성과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 관악산 승냥이 울음 같은 칼바람을 맞으면서, 연주암 부근 바위들 위에서 기도하던, 가난한 복음 전도사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 하은이, 소은이에게도 인정받기 위해서 계속 분투해야 합니다.


사회적 현실과 관련되어 집필하고 있는 책이 있으신지?

당분간 새 집필은 힘듭니다. 그러나 1986년부터 썼던 글이 있는데, 한 번도 단행본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지금 읽어도 상관성이 있고, 소수의 제자나마 50대의 목회자가 20대 때 어떻게 지냈는가, 무슨 생각으로 했는가를 일목요연하게 사상 필력과 자서전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책을 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사회사적, 영적 지평에서 한 개인이 어떤 생각을 하며 자라왔는지 그 분투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 오래된 글들을 2009년에 출판하시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 글은 암울한 독재시대 때 나왔습니다. 혹은 민주주의가 되지 못해서 인간의 기본권이 위협받던 때입니다. 또 통일이나, 민족화해 문제가 발 돋음이 안 되었을 때입니다. 지금 묘하게 2009년은 그 글에서 외쳤던 소리를, 다시 되울리게 하는 상황이 발생했네요.

그래서 상황의 적실성, 상황의 유사성 때문에 이 책을 한번 꼭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글들이 무겁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14만 원 받으면 그런 장중한 글이 나옵니다.


한국 교회 신뢰도가 낮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야 할 시대적 중심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한국 교회가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물적, 인적 자원을 사회봉사로 다 쏟아내면 됩니다. 우리 민족사의 고통을 한국교회가 끌어안았다고 확신이 들면, 우리 민족의 핵심 에너지가 교회로 몰려듭니다.

한국 초대교회가 북한 선천, 평양 지역의 교회가 우리 민족의 중심과제와 동일했기에 민족의 엘리트가 다 모여들었듯이 말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소셜 아웃리치(Social Outreach)라고 말합니다. 즉,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사람을 돌보면 감동을 받습니다.

부자들도 최일도 목사님께 감동받는 이유는, 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아야 하는데 자기는 못 하고 교회가 아니까 동조해 주는 것이다. 즉 인간 안에 있는 보편적 선량함을 끌어내는 방법이 뭡니까? 교회가 이 사회가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현실정치에서 돌봐주지 못하는 정치권 밖에서 소외된 지층, 민중들을 돌보고, 그들의 문제와 아우성에 동참하다가 보면, 신뢰도가 금방 회복됩니다.

가톨릭이 지금 10년 사이에 300만이 늘었습니다. 수녀와 신부, 평신도들은 아웃리치를 아주 많이 합니다. 소리 없이 합니다.


시대적 중심과제와 연관해서 청년들이 분투할 부분이 있다면?

우리 민족사에 중심과업인 분단체제의 해소와 20대가 마음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대한민국이죠? 그런 대한민국을 위해서 사회 변혁적인 이상주의를 표방해야 합니다. 이번에 나온 <복음과 상황> 2월호에 나의 글에 보면, 청년들이 역사의식과 도덕적 이상주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청년들이 월급을 안주고, 취직하려고만 하지 말고 새 직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 만들어야 합니다. 광범위한 직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실업이란 나에게 새 직장을 만들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고도의 정신적 강인함이 필요합니다. 분단체제의 해소를 통하여, 분단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선견지명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저는 2015년 내에, 우리가 해방된 지 70년 안에, 통일에 관한 커다란 분수령이 온다고 봅니다. 이미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개성공단과 경의선 철도 연결된 것이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봅니다. 보수정권이 이것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할 수 있지만, 이것은 한 인간이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사의 분단문제는 숙명론에 맡겨 놓으면 안 됩니다. 통일하려고 하는 능동적 분투자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힘을 모아주시고, 에너지를 주십니다.

이탈리아 통일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 밑에서 너무 시달렸지만, 마치니, 가리발디, 카부르와 같은 통일 주역들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통일 이탈리아를 꿈꿨기 때문에 통일이 된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치하에서도 히브리 민족 합창을 통해서, 느브갓네살과 같은 국제정세, 강대국의 힘 밑에 있다고 하더라도 히브리 노예들이 돌아가고자 열망했을 때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보내주신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비관주의, 낙담, 이건 안 됩니다. 어떤 난관에서도 우리는 비관주의를 이겨내야 합니다. 역사적 기억력을 가지고 새로 전개될 역사의 예언자적 투신을 통하여, 우리 민족사의 화해와 통일을 선취해야 합니다. 미리 맛봐야 합니다.

내 마음의 통일을 사회적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북한동포를 생각하면서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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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19 [04:30] 최종편집: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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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3. 22:01 스크랩

출처 : http://www.ddanzi.com/news/6187.html

2009.9.4.금요일

파토

이제 바보도 가고 인동초도 졌다. 시절은 점점 암흑으로 치닫고, 민주주의의 영광은 기억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듯 하다.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 장례 후 이명박의 지지율은 다시 오르는 등, 이 모든 상황은 그저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또 익숙해지고 있다. 실로 반역의 세월이요, 통곡의 세월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갈 곳을 잃은 우리들에게 지금 필요한 존재는 무엇일까? 많은 다양한 답이 가능할 것이고 그 모두 맞는 말이겠지만, 나는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우리에겐 어른이 필요하다.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주먹이나 돈의 힘이 아닌, 진정한 양심에서 나오는 권위를 통해 우리를 꾸짖을 수 있는 어른이 택도 없이 부족하다.

바보와 인동초는 물론이고, 우리는 얼마 전 그런 어른 중의 한 사람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김수환 추기경도 잃었다. 비록 말년의 언행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는 않으나 한국 사회의 어른으로서 그가 고비마다 미친 영향과 발휘한 리더쉽, 이끌어낸 결과들의 긍정성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유신 시절부터 87년의 직선제를 이끌어 낸 반독재 투쟁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학생에서 시작해서 국민을 통해 완결되었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은 수많은 종교계, 학계, 예술계 어른들의 힘찬 목소리가 그 뒤에 있었다. 필자의 세대라면 익숙할 문익환 목사와 백기완 선생 등은 물론 과거 함석헌 선생 같은 분 등 이름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지금은 망가진 김동길이나 김지하씨도 그때는 그런 입지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곱게 늙어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분들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나이가 너무 들어서 돌아가신 경우도 많고 위 괄호 안의 모씨들처럼 스스로 바닥을 드러내며 어른이기를 포기한 경우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은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과거에 비해 계산이 빨라지고 몸을 사리는 전반적인 사회 풍조의 만연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교만해져서 이미 존재하는 어른을 알아보지 못하고 섬기지 않는 태도에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각설하고, 사회의 양심적 구심점들이 다 붕괴되어 가는 이 시대, 그리하여 황색 언론의 대명사인 본지가 과분하게도 그런 입지에 놓이게 된 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사회의 진정한 어른들을 길러 뫼시고 찾아 섬기는 일은 현재의 총체적 난국의 해소는 물론 본지가 그 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이 가당찮은 짐을 벗고 다시금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날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최근 거침없는 언행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인물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바로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이다.

봉은사...

이곳이 어떤 곳이더냐?

강남 금싸라기 땅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사찰. 면적 2만 1천 90평. 공시지가 1천7백2십억 원. 그러나 인근 지역 땅값 평당 1억 원이니 개발시 추정 땅값 대략 2조원. 신도 수 25만 명에 연 수입 120억...

한때 우리나라 부자 사찰의 대명사이자, 세속적인 불교, 심지어 부패한 불교의 상징같이도 일컬어지곤 했던 이곳. 그래서인지 과거 그 관할권(?)을 둘러싸고 각목부대와 승려들 간의 폭력이 난무하여 우리나라 불교의 난맥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던 바로 그 곳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의 봉은사는 더 이상 그런 곳이 아니다. 아니 정 반대로, 세상이 다 거꾸로 돌아가는 와중에 어쩌면 봉은사만이 부처의 뜻을 전하는 순수하고 정대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오늘의 주인공 명진 스님이 있다는 사실이다.

명진 스님은 2006년 11월 21일 봉은사의 23대 주지로 취임했다. 그리고는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12월 5일부터, 불과 며칠 전에 끝낸 장장 천일간의 기도에 돌입한다. 지금까지 봉은사 주지 생활의 대부분을, 봉은사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는 천일기도만으로 보낸 거다.

머 9년 면벽했다는 스님도 있는데 봉은사 같이 큰 절에서 문 밖에 안 나오는 게 대수며, 그런 와중에 천일기도가 머 그리 어려운 거냐. 시간 맞춰서 중얼중얼 예불이나 하고 참선하는 듯 졸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전혀 그런 게 아니다.

기도 기간 동안 명진 스님은 새벽 4시 30분, 오전 10시, 오후 6시 30분 3회에 나눠 매일 총 1천 배의 절을 올렸다. 다시 말하자면 거의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3일에 3천배 씩을 연속해서 한 거다. 3천배는커녕 3백배라도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창 때의 청년도 감당하기 벅차고 한번 하고 나면 자리에 눕기 일수다. 하물며 60 연세에 매일 이런 정진을 한다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주지로서의 각종 업무와 결정들은 물론, 무엇보다도 봉은사의 이미지와 성격을 탈바꿈시키는 개혁의 손길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그 동안 신도의 수도 30% 증가했고 매주 일요일 하는 일요법회도 기존의 50여명에서 30배인 1500명으로 급증했다. 주요 회의에 재가 불자들을 참여시키는 파격을 단행하고,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연 80억의 재정 규모가 오히려 120억으로 늘어났다.

이 모든 것이 우리나라 보수의 중심지라고 할 강남에서, 한때 순잡음 교회와 함께 종교계의 부자 & 보수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봉은사가 단 3년 동안 신도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그들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얻어낸 성과다.

그래서 지금의 봉은사는 불전함마저 신도들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원래 주지가 자기 주머니처럼 사용하던 것이 불전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명진의 행보가 얼마나 파격적이고도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실 애초 명진 스님이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만도 놀라운 일이다. 그는 원래 전국의 산하와 거리를 누비던 불교계의 야인이자 실천운동가이기 때문이다.

대입 준비를 하던 18세때 우연히 만난 화두를 붙잡고, 1969년 백련암으로 성철 스님을 찾아가 법명을 받았지만 성철이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하자 도망갔던 일화, 그리고 5년이 지나서 법주사를 찾아가, 굳이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 탄성 스님을 골라 상좌가 되겠다고 우겨 출가하고, 불교계 내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인맥이 중요하던 시대에 철원의 초가집에 은거하던 여백우 처사를 찾아 배움을 받던 일 등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구도의 괴짜 스님 그 자체다.

85년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 10.27 법난 규탄대회로 감옥에 가기도 했고, 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때는 수많은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복을 벗어 불전에 올린 뒤 종단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대로 옷을 벗겠다고 해 많은 스님들을 울리고 종단개혁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돈과 지위 따위에 초연하고, 거대 사찰인 봉은사 주지가 되어서도 대전 마당을 직접 빗질할 정도의 소박함을 간직한 이가 바로 명진 스님이다.

이만큼만 해도 그 쿨함에 인간적인 매력이 동할 수 밖에 없을 터... 그러나 관세음딴지 섹션을 아직 갖추지 못한 본지의 입장에서 이런 불교계 내에서 행보만으로 그를 이 시대의 어른으로 추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오히려 불교계 바깥의 행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실 그가 세인들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끌기 시작한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 상황에서였다. 천일기도 기간 중임에도 결국 산문을 나와 고인의 영결식에 참여, 불교계 의식을 치른 것. 이것은 사실상 기도의 맹약을 깨는 것으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교계 안팎의 비난이 나올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권양숙 여사의 청을 듣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재차 부탁을 받고는 잠을 이루기 힘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령 부처님이 1만일 기도를 하다가 9,999일째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하자. 어찌 하셨을까. 나는 부처님께서 산문 밖으로 나가셨으리라고 본다.

우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승적 깨달음의 간지 아니냐. 기도라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용맹정진도 소중하지만 그 모두가 결국 중생을 위한 행위일 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언제든 깨 버릴 수도 있다는 뜻. 그 뜻이 오롯이 서 있지 않다면 어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으며 또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영결식장에서의 축원문 조차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뜻을 뚜렷이 밝히는 명문장으로, 과거 보수 불교 시대의 어정쩡한 회피형 선문답과는 크게 대조를 이루었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길지 않은 글이라 그대로 개재한다.

제16대 대통령 광주후인 노무현 영가시여!
노무현 영가시여! 노무현 영가시여!

이제 당신의 육신은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흩어져 돌아갑니다.
흙으로, 물로, 불기운으로, 바람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나 그 육신을 움직이던 주인공, 영혼은
어느 곳에, 무엇으로 계십니까?

일락서산 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입니다.
해가 서산에 지니 달은 동녘에 뜹니다.
지는 해와 같이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의 고결한 정신은 떠오르는 달처럼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노무현 영가시여!
당신은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마라 하셨습니다.
미안해하지 않겠습니다.

원망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불가(佛家)의 소신공양(燒身供養)처럼
온몸을 던져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그 뜻만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 어떤 불의에도 타협하지 않고 나아갔던 당당함,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지역주의를 허물기 위해
몸을 던졌던 대원력 보살행,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도 사람답게 사는 평등세상의 꿈,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던
발걸음...
그 어느 것 하나도 잊지 않겠습니다.

검은 구름 흩어지면
밝은 달 비추듯이
당신의 참뜻은 천강에 달이 비추듯 우리 가슴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떠나시는 길,
이천만 불자의 정성을 모아서 반야심경 한 편을
올리겠습니다.

본지 외에 어떤 사람이 서슬 퍼런 이 시대에 감히 이런 말을 권력과 국민 앞에 내뱉을 수 있더냐. 꽃 나비 춤추는 극락에서 행복하소서 운운하는 가소로운 웅얼거림을 예상했던 이들에게 명진의 이런 일갈은 한줄기 단비와도 같은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터.

그의 이런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억하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봉은사 앞에는 이후 아래와 같은 현수막이 걸렸다.

그렇다. 위의 축원문과 마찬가지로 그는 단지 고인의 죽음을 수많은 망자 중 하나를 대하는 승려로서 애석해만 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중수부 검사들의 봉은사 출입을 거절함으로써 그는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정권의 시녀에 대해 일종의 파문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점잖은 사찰에서 내건 이 플래카드의 그 문장 끝에는 (잘 보면) 느낌표까지 찍혀 있다. 이는 불순한 세상에 내뱉는 명진 스님의 뜨거운 사자후인 것이다.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음, 이 스님이 상당히 정치적이군 하고 넘어갔던 분덜이 있을 거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불교 홀대 정책으로 불교계가 열이 많이 받았구나 했던 분들도 꽤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의 계속되는 행보는 절대 그게 다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주지라지만 보수 신도들이 많은 봉은사에서 그의 이런 모습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기도 중인 스님이 왜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느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그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정부의 불교 차별에 대해 20만명의 불자가 서울광장에 모여 항의 집회를 했다. 자기들이 당한 불이익에 대해선 그렇게 분노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의 약자들이 당한 일에 대해선 정치적인 일이라며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또 왜 진보 편만 드느냐는 지적에 대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켜야 할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보수도 가치가 있다.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정직하냐, 정직하지 않느냐에 있다.

또 며칠 전 기도가 끝나기 직전, 사실상 감옥살이나 다름 없는 천일기도 중의 심정을 토로하는 인터뷰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광우병 촛불 집회에 대해) 촛불과 재협상을 통해 건강 주권을 찾자는 외침이었다. (중략) 광화문 나가고 싶었다.

기도 중에도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조의금을 조금씩 보냈다. 과일 떡도 자주 보내서 위로했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어 용산참사 현장에 가야겠다.

용선참사 수사기록 1만여쪽 가운데 3천쪽을 감추는 것은 앞으로 이 정권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올바른 검찰상이 요구된다. 천성관 내정자를 봐라(중략). 1분 뒤에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 있다(중략).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적용한 혐의를 천성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MB는 피 묻은 손으로 화해의 손을 내밀면 안 된다. 허언필망(虛言必亡 : 거짓된 말을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이다.

씨파... 이것이야말로 사회의 큰 어른에게서 우리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씀이 아닌가.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스님의 이런 마음은 언론을 통한 말로만 표현된 것이 아니다. 천일기도가 끝나자마자 그는 실제로 지난 30일 용산 참사 현장을 찾았다.

이어 순천향병원의 빈소와 한강로의 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그는 대 봉은사 23대 주지로서의 체면도 잊은 채 슬픔의 뚝뚝 눈물을 줄줄 흘렸다. 천일기도의 결과 어떤 희로애락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얻었을 법도 한데,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불교가 그런 것이었던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맘만 편하면 그만인 의미에서의 부동심을 얻는 게 부처가 되는 거라면, 차라리 영겁의 세월 후 개과천선의 여지라도 남아 있을 나찰이 되는 게 낫다.

또 이 자리에서 그는 "천일기도 끝에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설파해야 하는데 용산에 와보니 도저히 그게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죄가 많은 것 같다" 고 분개하면서 이명박 정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정권,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 이라며 오만한 정권에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천일기도 기간 동안 시주금 등을 모아 스스로 만든 물경 1억 원을 유가족에 위로금으로 전달하고 불자의 몸으로 고 이상림씨의 부인을 한동안 말없이 안아주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의 이런 용기 있고 진정 어린 행보 앞에서 사특한 무리들의 잡소리나 시시한 형식과 체면 따위는 이미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잠시 세상에 나온 스님은 9월 3일 강원도의 선방으로 가서 다시 두 달간 참선할 계획이란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으로 빠진 천일기도 중 하루를 보충하는 결제를 하기 위해서다. 단 하루를, 빠질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었던 것을, 그것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있는 중차대한 시기에, 산간 오지에서의 60일의 참선으로 갚겠다는 대찰 주지 명진의 이런 모습은 그가 어떤 맘가짐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60일은커녕 60년, 600년간 치러야 할 엄청난 죄과를 단 하루로 무마하려고 하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그의 이런 모든 깨달음과 용기는 부처 본인이 그러했듯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어머니는 여섯 살 때 자살했고 3개월 후 재혼한 아버지도 20대 때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혈육 동생도 군대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진짜 슬퍼봤소? (중략) 밥을 먹다가도 울고, 잠을 자다가도 울컥 울음이 쏟아져 이불을 적시는 것이오."

그 슬픔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피하기 보다는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승려의 길을 택했을 명진. 그러나 그는 이미 30년 전 화계사에서 춘성 선사가 열반했을 때 춘성의 애창곡 나그네 설움을 선창한 후 상가를 노래자랑과 춤판으로 만들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이후 한 보살(여신도)이 그의 호방하고도 깊은 모습에 반해 사랑을 고백하며 매달리자, 죽은 동생 묘지에 데려가 동생을 살려내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조용히 말한다. 이로써 남녀의 사랑보다 훨씬 깊은 삶과 죽음의 화두를 얻은 여신도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간 일은 전설적인 일화로 남아 있다.

그가 진짜인 것은 아래와 같은 그의 말에도 담겨 있다.

"부대사(497-569)는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밤마다 망상으로 잠이 들고, 아침마다 망상과 함께 일어난다오"

소위 깨달은 척, 진리를 아는 척 떠들어대는 일부 승려나 목사 등과 비교했을 때 이 얼마나 솔직하고 털털한 말씀이냐. 이런 양반이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은 어쩌면 노무현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 것 같은 열라 파격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과거의 행적만큼이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됨은 말할 것도 없다.

짧은 이 지면에 스님의 일대기나 행적을 몽땅 다 쓸 수는 없는 일이니 이 정도 하자. 대신 명진 스님의 주옥 같은 말씀을 아래에 일부 소개했으니 열분들 스스로 그 통쾌무비함은 물론, 때로 본지에 버금가는 엽기적 언변을 즐기시길 바란다.

●(중수부 검사 출입금지 현수막에 대해) 남의 통화까지 엿듣고, 메일까지 공개해 남의 생각까지 통제하려 드는 그들에게 잘못 보여 좋을 것이 없겠지만, 권력의 주구가 되어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그들도 남에게 당하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라고 그랬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은 모조리 고소고발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법망을 다 피해가게 하는 것. 그게 정상적인 법치인가요? 저는 천성관 검찰총장 같은 사람, 뇌물죄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해야 존경받고 무섭고 그런 거지, 힘 있는 사람들 다 빠져나가는 법이 무슨 법입니까. 깡패세계와 같은 것 아니에요?

●단풍놀이, 물놀이 가자는 말이 있습니다. 기차놀이 한다고 해서 애들이 허리띠에 새끼줄을 매서 칙칙폭폭 다니는 놀이가 있습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문동 재래시장에 가서 뻥튀기도 하나 들고 어묵 들고 다니는 것이 서민놀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민놀이.

●시아버지는 시위하는 망루에 올라가 있다가 불에 타죽고 자기 남편은 과격시위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여인도 있습니다. 이것 어떻게 할 겁니까. 이런 문제는 국가가 해결 안 합니까? 서민정치를 한다면 용산 현장에 가서 그 사람들을 달래고 그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야 되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럼 모르는 배부른 돼지들이 활개칩니다.

●그 동안 불교가 권력 앞에 비루했습니다. 잘못된 것은 지적해서 고쳐야 합니다. 봉은사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가사 벗고 산문 떠나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한국불교 문제점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불교는 선종으로 봅니다. 그런데 과연 선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제사종, 기도종, 관광종, 입장료종입니다.

● (천일기도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천일기도는 쇼입니다. 쇼를 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좋은 모습 보이면 따라올 것입니다. 불교미래 밝히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물론 나는 명진 스님과 일면식은 물론 어떠한 간접적인 관계조차 없으며, 심지어 불교도도 아니다. 그저 아직 이 땅에 우리가 뫼시고 사표로 삼아야 할 어른, 행동하는 양심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분께 실감나게 알려 드리고 희망을 드리고 싶다.

비록 바보와 인동초는 떠났어도, 멋진 인물들이 다 죽은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그들의 삶을 알고 배워, 부족한 우리도 나중엔 이렇게 멋진 사람이 함 되어 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아래는 덤이다. 천일 기도를 마친 명진 스님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인데, 이 글에서 소개한 스님의 주요 행적이나 정권에 대한 죽비같은 꾸짖음의 말씀 등 핵심은 몽땅 빠뜨린 채 신변잡기성 중얼거림과 봉은사 신도 및 예산 확장 관련 잡담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냥 오랜만에, 얘들 이런 애들이라는 거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고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7/2009082702089.html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