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New life !
johnworld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10. 12. 14. 00:09 스크랩

출처 : 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etc/suprise/view.html?photoid=4665&newsid=20101213170810342&p=ned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슬퍼한다. 그리고 추억 어린 물건들을 없애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름다웠을 그때를 간직하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헤어진 관계들을 위한 박물관' 설립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들어선 이 박물관엔 수백개의 '추억'들이 전시돼 있다. 전 세계를 돌며 전시회를 열고 최근 문을 연 이 박물관엔 신발과 속옷, 인형에서부터 의족까지 다양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은 유럽에서 수집한 것들이지만 싱가포르나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모은 물건들도 있다.

박물관을 찾은 한 관광객은 자신도 이곳에 추억이 깃든 물건을 기증했다며 "다른 사람과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명한 선택이다"고 말했다.

박물관 공동 설립자인 알린카는 "헤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혼자라고 느낀다"며 "그러나 여기에 물건을 기부하고 전시된 물건들을 보면 아픔을 공유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johnworld
2010. 12. 10. 20:14 스크랩
posted by johnworld
2010. 12. 8. 23:35 스크랩
기사입력 | 2010-04-08
최경희(위덕대 학생생활상담실장·심리학 박사)

가끔 TV에서 달인들의 묘기에 가까운 일솜씨를 보여 놀라곤 한다. 달인들은 그 비결에 대해서 '오랫동안 하다보니 자연히 이렇게 됐다'는 겸손의 대답을 많이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만의 노하우(know-how)가 있다. 또한 대부분의 달인들은 자신의 일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답을 하고 있다. 노왓(know-what), 즉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것도 잘 맞지 않았나 생각한다.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요리의 달인이 되기는 어렵듯이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잘 선택한 것이다.

자녀키우기는 어떨까? 자녀키우기에도 노하우와 노왓이 있다.

유학시절 심리적으로 미숙했던 나는 지도교수와 주위 동료들에게 유학생이 공부에만 전념해도 어려울 텐데 애 키우면서 제대로 해내겠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심신이 지칠만큼 아등바등 했었다. '아이가 없었으면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조금 더 있다가 낳았더라면...'하는 한심한 생각도 했었다. 우리 딸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곤 했는데 조금 성장해서는 원의 아이들과 싸움도 잦았다. 싸워서 뺨에 손톱자국이 난 채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앉아있는 아이를 볼 때면 '우리아이가 적응을 못하나?', '내가 애를 잘 못 키우고 있나?' 혼란스러웠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했는데 아침마다 엄마와 안 떨어지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안고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결국은 울며 매달리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나와야 했을 때, 누군가에게 가슴을 쥐어뜯기는 것처럼 아팠다. 죄책감에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내게 너무도 절실한 문제였다.

내 전공은 발달상담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심리적으로 건강한 아이가 되는지 이론을 공부하고 실제로 적용하면서 애써왔다. 나는 이런 전공을 하는데도 이렇게 아이키우기가 힘든데 다른 부모님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자녀키우기에 유능한 방법을 알고 있고, 헌신적인 부모라 할지라도 부모가 되는 일은 가장 어렵고 많은 스트레스와 좌절을 겪는다.

부모-자녀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기거나 자녀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부모는 자책하기 쉽고 부모로서의 능력과 자격에 대하여 의심하게 된다. 부모교육을 여러 기관과 초등학교에서 수십 회 실시하면서 '교육의 효과와 한계'를 늘 실감한다. 부모교육 후 지금껏 자녀에게 잘 못 양육해왔다는 생각에 반성도 하고 앞으로는 정말 바람직한 양육기술로 아이를 키우리라 굳은 다짐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부모님들께 피드백을 받아보면 적지 않은 부모님들이 머리로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알겠는데 행동은 안 따라 준다는 것이다. 이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도 자녀에게 잔소리와 모욕적인 말을 하고 정신없이 때리고는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였다. 자녀양육의 노하우는 알았지만 여전히 자녀와의 관계가 어렵다.

그러면 부모로서 무엇을 해야할것인지 노왓에 대해 고민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에게 문제나 상처가 있다고 느껴지면 아동상담을 의뢰하여 자녀를 치료하려고 한다. 그런데 부모가 성장하면서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에 자신이 받은 상처는 방치해 둔 것이 자녀양육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 시기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안에 살고 있는 내면 아이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발견하고 보듬어주는 내면아이 치유의 경험이 필수적이며 그 때서야 진정한 내면의 편안함이 찾아온다.

직업의 달인들이 노하우와 노왓을 잘 알고 있듯이 자녀문제로 고민이 될 때 자녀양육기술과 더불어 부모자신의 내면을 치유하는데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나 역시 부모교육의 노하우를 교육해 왔는데 이번에는 지역의 교육기관과 연계하여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자기변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포항시보육정보센터(Tel. 054-256-2580)나 한국청소년체험문화재단 포항지부 우리들 좋은세상(054-247-8190)에 문의하면 이와 관련된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최경희(위덕대 학생생활상담실장·심리학 박사)
posted by johnworld
2010. 12. 5. 21:39 As it is

출처 : http://blog.naver.com/e_library/120055017857

-교사미디어워크숍 포럼2 미디어폭력과 정의교육-

이 정 석 (국제신학대학원 교수)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인간의 정의개념이 신의 정의개념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성의 창조를 통한 일반계시 이외에도 특별계시를 통하여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정의라는 개념은 신에게 의존적이고 파생적인 이차적 성격을 가지고, 그 원형은 신의 속성으로서의 정의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속성은 정의뿐 아니라 사랑, 자비, 지혜 등 여러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의 인격적 통일성안에서 정의개념이 다른 속성들과의 연관성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 성경의 정의개념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정의를 가리키며, 이차적으로는 그러한 원형적 정의에 맞는 행위를 인간의 상대적 정의로 본다.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의 도덕적 양심과 율법을 비롯한 신의 자기계시를 통하여 나타나므로, 율법이나 양심에 따른 행위가 정의이며, 그것을 거스리는 행위는 불의와 죄악으로 규정된다.

2. 정의는 평등과 연관된다. 만인은 하나님에 의해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기본적인 인권이 주어졌다. 따라서, 힘에 의한 불평등은 불의가 된다. 금력, 권력, 혹은 폭력과 같은 힘으로 약자를 억압하는 자는 정의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된다(겔 45.9, 골 4.1). 따라서, 하나님의 정의는 약자를 보호하고 그의 권리를 되찾아주며 그를 도와주는 것이며(시 82.3, 140.12, 146.7, 겔 34.16), 다른 한편 불의한 자들에게는 복수적 정의로서 형벌과 징계가 주어진다(합 1.13). 통치적 정의를 행하는 하나님은 권선징악의 심판자로서 모든 재판자들이 그의 정의를 따라야 하며, 재판이 불의하게 되면 위기를 초래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존중되며 받을 것을 받는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며(암 5.24),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로운 사회이다.

4. 그러나, 정의가 단순히 기계적 평등개념에 근거하지 않고 약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근거한다. 따라서, 성경의 정의개념은 냉정한 심판논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자를 신원하고 도와주는 은혜의 성격을 가진다. 여기서 겸손과 의존, 신앙과 통회가 정의와 연결된다. 믿음과 회개로 하나님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이 용서하고 구원을 베푼다(합 2.4, 요일 1.9). 이것이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다. 바울은 자기의와 하나님의 의를 대립시키고 인간 스스로 정의로운 인간이 될 수 없음을 가르친다. 정의는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그에 대한 겸손을 전제한다(습 2.3, 슥 9.9). 따라서, 성경의 정의개념은 거룩함과 경건에 기초하다(미 6.8).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지하지 않고 교만한 자에게는 정의의 형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복수적 정의의 실현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며 최후의 심판에서 완성될 것임으로, 인간에게는 복수가 허용되지 않는다.

5. 우리의 정의는 그리스도이다. 그는 진정한 정의를 행하는 자로 예언되었다. 그는 십자가를 통하여 죄값을 치루는 정의를 실현하고, 그를 믿는 자에게 정의를 부여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의 정의로서(롬 3.26), 자기 희생을 통하여 자기에게 정의를 실행하고 타인에게 용서의 은혜를 베푸는 복음적 정의이다. 그는 ‘공의를 행하여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시다(사 45.21).

* 출처 : 깨끗한 미디어를 만드는 교사 이야기(2000)

-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