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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0. 13:20 Daily Bread

거인들의 발자국 (한 홍 목사) 중에서...

나는 부르심을 받고도 35년 동안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면서 도망자의 인생을 살다가 인생의 벼랑 끝에서 마침내 백기를 들고 항복한 한 사람을 알고 있다. 어느 주일 아침, 나는 두란노 사무국 간사로부터 메모지 한 장을 건네 받았다.
"오늘 새벽 2시경, 금종성 씨 사망. 동생 금종연 집사에게 연락 바랍니다."

순간 나는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마침 양재동 횃불회관에서 드리는 온누리 교회 3부 예배에 설교하러 가야 했기에, 차를 몰고 가면서 금종연 집사님과 연락을 취했다. 집사님은 조금 울먹였지만 밝은 목소리로, "목사님, 오빠는 식구들이 찬송 부르는 가운데 잠자듯이 평안하게 가셨어요. 목사님에게 너무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했어요. 감사해요" 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목이 콱 잠겨 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너무나 평안하고 축복된 죽음을 하나님께 받았다고 생각했다.

금종성 씨를 내가 처음 만나 것은 2000년 2월 교회 수요 강단에서 "사랑의 추적자"란 제목으로 8주 시리즈 메시지를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내가 섬기고 있던 공동체의 금종연 집사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다. 대전에 사는 자신의 친오빠가 몸에 이상이 생겨 서울 삼성 의료원으로 와서 진단을 받았는데, 암 말기라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즉시로 금 집사님과 공동체의 다른 집사님들과 함께 삼성 의료원으로 달려갔는데, 가는 차 안에서 금 집사님은 울먹이면서 자신의 오빠가 너무 불쌍하다고 했다.

종가집 장손이기 때문에, 당시 대학을 나와 서울의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었는데도 어쩔 수 없이 대전에 눌러 앉아 고향을 지켰다는 오빠. 동생들을 제대로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기 위해 정말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었다는 오빠. 그가 대학 시절 대전 지역 UBF 라고 하는 선교 단체 창단 멤버였을 정도로 기독교에 심취해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오늘까지 교회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는 것이다. 어쩌다 동생이 전도라도 할치라면, 교회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불호령을 내릴 정도였단다. 이제 다들 살 만하게 되었고, 아직 자식들 시집 장가도 못 보냈는데 암 말기라니...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눈을 지긋이 감았다.

병실로 들어서 보니, 침대에는 강렬한 인상의 가진 50대 후반의 남자가 형형한 눈빛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옆에는 가족들이 핼쑥한 얼굴로 서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의외로 자진해서 자신의 인생 여정 스토리를 피를 토하듯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춤주춤 품에서 빛 바랜 옛날 사진 하나를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35년 전, 대전 지역 UBF 선교 단체 창설 멤버들이 모여서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서울로 진단을 받으러 올라오면서 벌써 심상찮은 느낌을 받았던 그는 어떻게 된 셈인지 옛 사진 앨범에서 이 사진이 계속 생각이 나서 고이 들고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나도 옛날에는 열심히 성경도 공부하고 그랬어요. 그저 주위에 예수 믿는다는 인간들이 워낙 위선자 같어서 그때부터 교회와 담쌓고 살아왔을 뿐이예요. 그런데, 이제 새삼 그때 그 시절이 그렇게 기억이 나네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곁에 앉아 차근차근 복음의 진리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며 말했다. "금종성 씨, 하나님은 사랑의 추적자입니다. 당신은 그를 버리고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는 당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35년 동안 당신도 하나님께 등 돌리고 사느라고 속으로는 몹시 괴로웠을 겁니다. 이제 도주를 포기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더 이상 피곤하고 두려워하며 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상하게도 그의 눈에 눈물이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요. 이제는 때가 되었나 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내 손을 잡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35년 만의 도주가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옆에 선 가족들이 믿기 어렵다는듯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환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삼성 의료원에 원목으로 있는 김정숙 사모님이란 분이 몇 번 방문해서 상당히 많이 이 분의 마음을 열어 놓았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이래서 팀워크가 중요하다니까.)

몇 주 후에 그는 온 가족을 모아 놓고 나를 초청했다. 내게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다. 가족들이 다 모인 원목실에서 나는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바로 성만찬을 나누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얼굴에는 이제 죽음의 빛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차 있었다. 지켜보는 가족들은 계속 줄줄 고장난 수도 꼭지처럼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 눈에서도 계속 땀(?)이 났다. 그는 축하객들이 들고 온 꽃다발을 받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하나님한테 잡히고 나니까 너무 좋습니다. 이제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도 겁니 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무 편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 좋습니다."

의사는 한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 후 6개월이나 더 살았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는 철저한 유교 정신으로 무장한 집안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흔들어 놓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조용한 충격을 주었다. 그렇게 삶을 정리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하심을 나타낼 기회를 하나님은 주셨던 것이다. 그가 숨을 거두기 3주 전, 나는 대전 그의 집으로 전화해서 기도해 준 적이 있는데, 그는 힘찬 목소리로 말했었다. "이제 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제 이 땅에서 영원한 저 집으로 갈 준비가 되었고 마음은 강같이 편합니다."

나는 아직도 귀에 생생한 그 목소리를 생각하여, 차창 밖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금종성 씨, 언젠가 그 빛나고 아름다운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당신이 사랑의 추적자이신 하나님에게 붙잡히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습니까?"

역시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만남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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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게 주신 구원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이리도 귀하고 중요한 것을... 미처 누리지 못하고, 생각지도 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시 붙잡힌 바 되어 살고 싶다. 그 분의 사랑이 내 마음에 부은 바 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이 흘러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게 주신 구원이, 당신의 사랑이, 내게 있음을 감사합니다. 당신을 외면하는 인생을 살게 마시고, 내게 주신 귀한 인생,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게 도와 주십쇼... 구원 하나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인생되게 해주십쇼...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