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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0. 13:27 Daily Bread

성경에 나오는 슬픈 사건들 가운데 몇몇은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어났다. 때로는 그들의 헌신의 깊이가 깊을수록 이야기는 더 슬프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 두 가지를 들어 보겠다.

아브라함이 75세의 고령이고, 그의 아내 사라는 그보다 열 살 아래인 65세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다.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결혼하여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한 명의 자녀도 얻지 못했고, 이 면에 대해서 그들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는 데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약속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은 그 약속을 믿고 부푼 꿈을 안고 기쁨 가운데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아브라함은 85세, 사라는 75세가 되었으나, 여전히 자녀가 없었다. 참으로 실망이 될 뿐 아니라 당황도 되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창세기 16장을 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들의 대화 내용이 나온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여종 하갈을 취해 아이를 낳기로 한 것이다. 당시 문화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관습을 공인해 주신 적은 없었지만, 당시에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던 관습이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갈을 취하여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의 이름은 이스마엘이었다.

아브라함의 동기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시기 전까지는 자녀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귀에 쟁쟁했던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자기 노력으로 일환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행동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갈을 통하여 자녀를 낳으면 어떨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되었던 것도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인 이스마엘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다시 14년이 지난 후에야 사라 자신이 잉태하여 이삭을 낳았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무려 25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이삭을 제물로 바치도록 요구하실 때 아식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창 22:2)이라고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인정치 않으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진지하게 임한다 하더라도 그 분을 위한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을 하나님은 인정치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일을 위한 통로가 되라고 우리를 부르셨지, 하나님을 대신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이스마엘의 출생은 아브라함이 구상하고 계획을 짜고 행한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삭의 출생은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로만 설명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들을 대면할 때 그것들을이루는 수단은 하나님뿐이시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 말이 우리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행하사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빌립보서 2:13)을 토대로 하고 있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