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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0. 13:25 Daily Bread

물 묻은 손으로 비누를 쥐려고 애써 본 적이 있다. 쥐었다 싶으면 어느새 다시 빠져 나가 버린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삶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 삶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경험하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직접 체험하는, 기쁨이 넘치는 순간들이 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목적을 알게 되고, 또한 틀에 박히고 무의미해 보이기만 한 삶에 참 의미와 만족을 주는, 주님에 관한 진리들을 새롭게 배울 때는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확신 있고 생동감 넘치는 견고한 삶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기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붙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빠져 나가고, 그런 삶에 대한 기억과 함께 좌절감만 남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실을 바라보게 되면, 생동감이 넘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앞으로도 결코 상태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첫 몇 해 동안의 나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은 어느 형제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던 95년 8월 30일 오후였다. 나는 거기에 응답했다. 나는 어릴 적 부터 교회에 다녔고, 또한 복음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는지에 대한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 그 이후 나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비록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의미하는바 모든 것을 삶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데는 몇 녗이 더 걸리긴 했지만, 내가 구원받은 것은 분명했다.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사랑이 자리잡게 되었고,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하는 새로운 열망과, 사람들과 일상적인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발단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살며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하는 새로운 열망은 현재의 나의 삶이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는 너무 차이가 있다는 확연히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기쁨과 열정은 이내 좌절감으로 바뀌었다. 아니 지금도 시시때때로 이런 것을 느낀다. 나의 신앙은 삶에서 아무 힘이 없었으며, 나는 실패자였다. 그러나 나는 용기가 없어 이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그 당시 내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는 빌립보서 2:3 말씀을 알고 있었더라면, 나의 문제를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말씀을 알고 있지도, 그러한 진리를 이해하고 있지도 못했다. 나는 내 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소원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소원을 위해 행하는 일에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관계하신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연약하기만 한 내 자신이 나의 행동을 그 소원과 일치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올바른 것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과 실제 행동이 차이가 나면 날수록 나는 더 깊은 좌절감과 무력감을 경험했다.

자연히, 그리스도께 더 큰 "헌신"을 하도록 도전하는 설교를 들을 때 마다 나의 무력감은 더했다. 그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나는 진지한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하는 기도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신선한 열정이 되살아나고 발걸음은 힘이 있었으며, 이번에는 뭔가 이루어 보겠다는 꿈에 부풀곤 했다. 그러나 며칠이 못 되어 나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다시 헌신에 관한 도전을 받고 내 자신을 하나님께 재헌신하곤 했다. 이런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이지만, 그때마다 매우 진지한 태도로 임했었다. 종종 '이젠 됐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쥐었다 싶으면 빠져 나가는 미끄러운 비누처럼, 그 새로운 경험은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후에는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높은 수준이었는가?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수준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부지런히 달리도록 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높은 수준을 제시하신 것은 아닐까? 따라서 그 수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혹 어리석은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는 마치 당나귀 앞에 당근을 매달아 놓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멋있는 약속을 제시해 놓고 우리가 열심히 그것을 향해 나아가도 결코 도달할 수 없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놀리시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새로운 진리 하나를 깨달음으로써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거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었다. 만일 누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계십니까?"하고 물었다면, 나는 즉시 "제 속에 거하십니다"라고 확신있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게 있어서 예수님은 나를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하여 천국으로 향하는 길로 이끄신 후에는 아무 적극적인 역할도 수행하시지 않는 "잠자는 파트너"와 다름이 없었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