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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0. 13:32 Daily Bread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실제적으로 생각하면서 나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면 너무도 보잘것없는 자신을 보게 되고, 좌절감과 무력감과 환멸감만 더 느끼게 된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그가 정식 축구팀과 경기를 한다면, 그는 아마도 자신이 생각했던 만큼 축구를 잘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일 국가 대표팀이나 세계 일류팀과 축구를 하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축구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깨닫고 열등감과 좌절감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며, 공 한 번 잡아 보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더 높은 수준의 사람들과 경기를 할수록, 또 그들의 수준과 자기의 실력을 비교할수록, 더욱 더 그는 자신이 실력이 없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를 알게 되면, 감탄을 느끼며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고자하는 진지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본을 따르고자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선한 의도로 한 이것이 도리어 우리에게 좌절감만을 안겨 준다. 예수님의 완벽한 삶을 살펴보며 그 본을 따르고자 애를 쓰면 쓸스록 더욱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삶이 위대하고 내가 당연히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예수님의 삶과 나의 삶 사이에는 너무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됨으로써, 오늘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희망이나 도움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왜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그토록 아름다운 삶을 사셨을까?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놀라운 사실들을 말씀해 주셨다.

먼저 자신의 일에 대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한복음 5:19)고 말씀하셨다. 병든자를 고치시고, 수천 명을 먹이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자신의 심판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한복음 5:30)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놀라운 분별력을 알고 계셨으며, 사람들도 예수님이 자기들의 마음을 꿰뚫고 계심을 알았다. 그분의 생각은 언제나 옳았다. 그러나 그분은 심판에 대하여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고 하셨다.

자신의 말씀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한복음 8:28).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놀랐다.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요한복음 7:46).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나사렛의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은혜로운 말씀에 놀랐다(누가복음 4:22).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신선했고 심오했으며, 중심을 꿰뚫었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에 대해 "스스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아무것도"라는 말이 이해가 어렵다. 그 말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힘빠지게 하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예수님께는 아주 중요한 말이었다.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 설명하는 가운데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립보서 2:6~7).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비우셨다. 곧 아무것도 아닌 자로 여기셨다. 예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셨다면, 그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는 사실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셨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행치 않으셨다.

잠시 생각해 보자. 혹시 자신이 무용지물이라는,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마땅히 살아야 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해 본 적이 있는가? 베드로가 고기를 잡기 위해 애쓴 후에 바닷가에 서 계신 예수님을 향해 "우리가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습니다(누가복음 5:5)라고 말씀할 때 가졌던 것과 같은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애써 일하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열심에 열심을 더하였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자신! 아마도 그 사실을 선뜻 인정치 못하도록 막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뭔가를 이루기를 기대하고 계시리라는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무능을 인정하기보다는 더 열심히 노력해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복음에 포함되어 있는 좋은 소식이 있다. 이것이 복음의 전부는 아니지만 아주 주요한 부분이긴 하다. 즉 당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 당신은 위대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예수님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셨으며, 그분의 인간적인 자원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우리 아니 당신보다 조금도 더 능력이 많지 않기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큰 격려를 줄 것이다. 우리 자신도 자신의 인간적인 자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5:5)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원치 않는 것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안다"(로마서 7:18)고 했다. 선한 일을 행하는 것에 관한 한, 바울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위대한 순간들 가운데 하나는, 심령이 가난해지며(마태복음 5:3),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자원만으로는 자신이 창조시 의도된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마땅히 하기로 되어 있는 것들을 행할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이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