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New life !
johnworld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05. 5. 21. 15:09 Bible Guide

1. 단 11:5 "남방의 왕은 권세를 떨치리니" - 여기서 '남방의 왕'은 이집트 지역을 통치하는 톨레미 1세(Ptolemy 1) 로서 '그가 강하다' 는 것은 이 톨레미 왕조가 BC 3C 내내 팔레스틴에 대한 치리권을 가졌던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한 '그 군들 중에 하나'는 분열된 네 왕조 중의 하나를 지시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시리아 왕국의 초대 왕인 셀류쿠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를 가리킨다.

그의 권세가 심히 커진다는 것은 본래 톨레미 왕조보다 미약한 세력으로 출발한 그가 이후 지속적인 정복 사역으로 BC 200 년경 톨레미 왕조의 통지하에 있는 팔레스틴을 정복하고 인도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막강한 세력으로 군림하게 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2. 단 11:6 시리아와 애굽의 전쟁.
이 절은 셀류쿠스 왕조와 톨레미 왕조가 서로 동맹을 맺기 위해 시도했던 정략적인 결혼이 실해할 것임을 언급한 것이다.

이 절의 사건은 BC 250년 톨레미 2세인 필라델푸스(Philadelphus)가 그의 딸 베레네스(Berenice, '남방왕의 딸'로 기록되어 있음)를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2세인 데오스(Theos, '북방 왕'으로 기록되어 있음) 와 결혼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안티오쿠스 2세는 벨레네스와 결혼하기 위해 본처인 라오디스(Laodice) 와 이혼을 하였다.

전처인 라오디스는 자신의 아들이 계승권을 박탈당하자,베레네스와 그녀의 아이를 살해하고 결국에는 안티오쿠스 2세 데오스마저 독살시킴으로써 이 정략적인 결혼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 실권을 장악한 라오디스가 베레네스의 동조자들('그를 데리고 온자... 도와주던 자'로 기술되어 있음)을 제거하고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켰던 바, 그가 바로 셀류쿠스 2세인 셀류쿠스 칼리쿠스(Seleucus Callinicus)이다.


3. 단 11:7 시리아와 애굽의 전쟁
본문은 6절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톨레미 3세 유엘게테스(Euergetes, '공주의 본족에서 난 자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음)가 BC 246년 누이 베레네스의 복수를 위해 북방 왕조 곧 시리아의 셀류쿠스 칼리니쿠스를 공격하여 6년간(BC 246-241) 전쟁을 한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이 전쟁에서 그는 자기 누이를 살해한 라오디스를 죽여 누이의 원수를 갚고 수많은 전리품, 곧 4,000달란트의 금과 2500여개의 우상들을 이집트로 탈취해 갔다.이러한 전리품은 이미 바사와 캄비세스가 BC 524년 애굽에서 탈취해갔던 것들로 보여진다.

특별히 우상(신상)의 탈취는 고대에 있어 정복자들의 일반적인 관습으로 자기들 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의도에 기인한 것이다.

8절에 기술된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는 BC 240년 톨레미 3세가 셀류쿠스 2세와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될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4. 단 11: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나라로 쳐들어 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돌아가리라' - 북방 곧 시리아의 셀류쿠스 2세 칼리니쿠스가 7,8절에 언급된 톨레미 3세 유엘게테스의 시리아 침공을 보복하기 위해 평화 조약을 파기하고 남방의 애굽을 침공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셀류쿠스 2세는 오히려 톨레미 3세에게 대패한 후 소수의 남은 군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퇴각했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