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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1. 15:12 Bible Guide

'성경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방법론들이 난무하고 있는 현실에서 보다 적절한, 그리고 효과적인 길을 찾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석 방법론은 오랜 시간을 두고 적지 않은 변천을 보여왔다.

종교 개혁 이전의 해석
초대 교회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는 해석 방법론이 사용되었다. 하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와 유대주의적인 영향을 받은 알레고리(allegory, 풍유) 방식의 해석 방법론 이었고 또 하나는 소아시아 안디옥의 크리소스톰(Chrysostom)을 중심으로 하는 문법적-역사적(grammatical-historical) 해석 방법론이었다.

누가복음 15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 관련해서, 강도 만난 자가 그 같은 고난을 겪게 된 이유를 말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집(예루살렘)을 떠나 세상(여리고)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대표적인 알레고리 방식의 해석이다. 주님은 이 비유에서 강도 만난 이유에 대해 초점을 두지 않으셨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될 것을 촉구하신 것이다.

알레고리 해석은 본문을 내놓은 저자(화자)의 의도와 대체로 무관하다.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의 말씀을 알레고리로 해석한 부분 외에는 본문을 멋대로 알레고리로 해석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알레고리 방식은 해석자의 비상한 해석 능력이 돗보일 수 있고 또 듣는 자로 재미있게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본문 자체의 목적과 의도는 무시되고 해석자의 상상적 이해가 본문의 메시지를 대체해 버리게 된다. 위험하다.

알레고리 방법의 득세는 본문 중심의 문법적 해석의 문을 좁게 했고, 본문의 저작 의도를 이탈한 다양한 해석의 분출을 터놓았다. 그 결과 이단적 이해들이 많이 나타났고 교회는 교회의 보존을 위해 교리적 해석을 강화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오리겐(Origen)과 어거스틴(Agustine)의 시대를 거쳐 풍유적 방법이 점차 득세함에 따라, 그로 인해 발생한 해석학적 문제들로 인하여 이 후 터툴리안(Tertullian)의 믿음의 법칙(regula fidei)으로 강화된 교회 당국의 해석의 우선성이 부가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리적인 해석이 본문 중심적인 해석과 반대되지 않고 실제로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임에도, 성경 해석권이 카톨릭 교회에 국한되고 개인적인 해석 노력이 극히 제한된 것으로 인해, 중세에 안디옥학파의 해석 전통인 문법적-역사적 방법론이 전반적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중세 이전에는 알레고리 방식이, 중세 시대에는 카톨릭 교회의 교리적 해석이 본문 중심 해석의 길을 막은 셈이다.

종교 개혁과 해석
종교 개혁은 다시 안디옥학파의 해석학적 방법론으로 되돌아가는 운동이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그릇된 교회로부터 바른 해석권을 되찾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 개혁자들의 해석학은 성경의 절대 권위와 축자영감설(verbal inspiration)을 전제로 하여 문자적-문법적-역사적 측면에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이들은 과거의 풍유적 성경 해석과 교회 당국만의 성경 해석 권한을 거절하고 단연히 일어섰던 분들이다.

루터는 로마서를 읽다가 교회 해석의 오류에 반기를 들고 개혁을 일으킨 것이다. 그가 자국어인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려 한 것은 바로 대중들로 성경을 바로 읽고 해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칼빈도 그 자신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다가 종교 개혁의 주창자가 된 것이 확실하다. 그가 쓴 많은 주석은 그것을 증거한다. 칼빈의 성경 이해와 해석의 지속된 노력의 결과로 나온 것인 "기독교 강요"였다. 카톨릭 교회의 그릇된 교리적 해석에 반대하여 일어난 종교 개혁은 본문 중심 해석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역사 비평의 발흥
종교 개혁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로마 카톨릭 교회의 독점적 해석 권한을 부인했던 종교 개혁의 주장과 자유적인 인문주의의 부흥(르네상스 운동)이 후 종교 개혁(post-Reformation) 시대에 바람직하지 않게 결합되어 일어난 것이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이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에 뿌리를 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과 진화론적 다윈설과 변증법적 사고가 결합하여 19세기 서구신학자들에게 성경 해석에 있어 역사 비평을 위한 강력한 장을 제공했다.

역사 비평은 예수의 시대와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모든 초자연적인(또는 기적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단지 자연적인 현상과 개연성(probability)을 기준으로 이들을 재해석하려는 시도이다. 기본적으로 역사 비평은 성경 본문을 해체해서 초대 교회의 역사적 정황을 다시 구성해 보려는 비평적 노력이다. 여기서 '해체'라고 한 것은 성경 본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주장하게 된 가상적인 다른 이유들을 더 찾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자료 비평(source criticism)은 본문이 한 사람의 작품으로 일관성 있게 쓰여진 것이기 보다는 여러 가지 자료들의 섞인, 일종의 편집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 연구에서 자료의 차이에 특히 주목한다.

양식 비평(form criticism)은 보다 작은 단위의 형식(sub-genre)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본문에서 추려내어 그 기원을 추적하고 그 진정성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다양한 양식들을 추출하고 이들에 대한 평가를 주로 한다.

편집 비평(redaction criticism)은 저자가 본문을 편집할 때 저자의 상황과 특유의 신학이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본문(특히 복음서)에서 저자적 특성과 신학이 어떻게 본래의 사건에 영향을 끼쳤을지 연구한다.

이 같은 역사 비평적 연구는 결국 종교사학파(history fo religion)의 시각에서 귀결이 되는데, 그것은 예수 운동과 초대 교회의 사역이 당시의 종교, 사회적 기존 그룹(유대교, 헬라 종교)들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비평적 연구 결과로 성경의 권위는 해체되었고, 다시 한번 본문 중심의 해석 연구에 대한 열심이 식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는 교회의 쇠퇴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이들 역사 비평 연구는 기본적으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성을 제거하려 했던 해석 시도였다. 뒤틀린 전제를 가진 연구의 결과가 뒤틀리게 나타난 것은 일견 당연하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