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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0. 13:07 Daily Bread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 6:10)

이 구절의 앞부분에는벨사살 왕이 자기 아버지였던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함으로 7년을 짐승처럼 지낸 것을 알고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것을 보았는데, 오늘 이 구절에 역시 같은 표현인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즉,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았음에도 그의 여전한 모습을 관찰 할 수 있다.

다리오 왕이 새롭게 부임한 이후에 다니엘 외의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찾고자 했으나 찾지 못하였고, 결국 그의 신앙과 관련된 부분을 단서로 잡아 그와 같은 내용에 어인을 찍도록 왕을 부추긴 것이다.

그들의 뜻대로 일은 진행되었고, 다니엘은 결국에 사자 굴에 던져진다.읽으면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마치 드라마에서 보던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 진 이후의 굴 안에서 어떤 상황과 형편이었는지의 묘사는 없고,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아껴 근심하고, 금식하고 하는 모습들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떤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순간에 잠시 다른 장면을 보여주고, 궁금증을 유발시킨 후 끝에 가서야 그 결과를 알게 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다니엘서에도 이 부분과 관련해서마찬가지로 다음 날 새벽같이 다리오 왕이 사자 굴로 가서, 슬피 울며 소리 질러 다니엘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면서, 다니엘이 굴 안에서 대답하여 아직 살아있다는 목소리를 듣게 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드라마에서의 그런 처리 기법은 이것을 보고 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니엘의 그와 같은 행적은 나로 하여금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믿음의 견고함과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다니엘은 포기해야 할 것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타협해야 할 것과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소년의 나이에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왔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것은 부모를 떠나 타지에 포로의 몸이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곳에서 배운 학문이 점성술 등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에 거스리는 학문을 배웠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의 이름조차도 "벨드사살" 이라는 즉,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 라는 뜻의 바벨론 신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이다. 물론 그의 나이가 어렸던 탓에 그와 같은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 상황에서 나름대로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를 거절하는 지혜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처음의 그와 같은 여러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런 몇가지 것들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이 구절은 그의 나이 80 쯤이 되어서의 기록이며, 그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는 왕의 어인이 찍혀 어길 시에 돌아오는 생명의 위협을 알면서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기에분명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된다. 당시의 상황에서 '어인이 찍힌 조서'만큼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이 있을까? 그것은 곧 그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믿음'이라는 것이지금의 현재 이곳에서의 상황과는다르지만그와 같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목에 칼이 들어오면서 나의 '믿음'을 드러내야만 하는 상황이 언제든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지금 갖고 있다는 '믿음'을 테스트 한다는 사실... '믿음'은 '치장'이나 '수려한 말'로 표현되는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어디에선가도 그와 같은 생명을 담보로 치열하게 '믿음'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어찌되었든 다니엘의 믿음은 그러하였다. 알고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는... 그가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였을까? 자세한 기도의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전에 행하던 대로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가 사자 굴에 던져질 그 상황에서도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 6:16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다니엘은 저항하지 않았다... 전혀... 그냥 던져졌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에 있다. 그렇다고 육체의 삶이 전혀 가치 없는 것일까?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그가 외칠 수 있는 말이라도 있지 않았었을까? '삶에 대한 애착'과 '슬픔'과 '분노' 그리고 그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와 같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면서 순순히 응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일까?...
조그만 손해나 피해에도 마음 조급해하고 불편해 하면서 챙길 것 다 챙기는 나와 같은 부류와는 전혀 다른 분이다. 어쩌다가 무슨 일로 사람들에게 얘기했을 때, "왜 바보처럼 가만히 있느냐"는 핀잔이라도 듣는 때면, "내가 참 많이도 어리석고, 아는 것이 없고, 계산적이지 못했다. 왜 나는 저 사람들처럼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같이 휩쓸려 가는... 나만 바보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게 될 때... 정말 그것이 잘하는 것일까? 그런 내가 다니엘과 같은 상황을 만나기다로 했다면... '믿음'이라도 부인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명리'에 밝은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다... 그것이 때론 나로 하여금 숨막히게 만든다... 가끔 나는 내가 '바보(?)'스러울 때가 좋은 때도 있는 것을...

결국 그는 살게 되었고, 그를 고소한 무리들은 오히려 그 사자 굴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며, 전과 다른 새로운 조서가 내려진다. 그는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흔들림 없는 견고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오늘 그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