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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21. 15:05 As it is

발...
우리 주님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 가르침을 주신 곳은, 다름아니라 성만찬을 행하셨던 자그마한 이층 다락방이었다. 그 다락방은 팔레스타인 땅의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사실 그 위치는 어느 한 건물의 이층이 아니라 십자가를 코앞에 두고 있는 '십자가의 목전'이었고, 그 시간은 유월절을 맞이하려는 즐거운 어느 저녁이 아니라 고통스런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이브'였다.

바로 그 장소 그 시간에, 우리 주님 예수께선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 가르침을 주셨다. 이제 떠나가실 그분께선 남겨질 제자들을 행해 지난 3년간의 함께함을 정돈하시면서 마지막 총정리를 하고 계셨다. 도대체 제자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마지막으로 설교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행하셨던 성만찬 설교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며 시작한다.
...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일까?

그날 밤의 첫 장면은 '발을 씻겨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성만찬이 있던 그날 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 마지막 설교를 하시기 바로 직전, 한마디 말씀도 안 하시고 한사람 한사람의 발을 씻기시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아주셨다. 아마 주님께선 제자들의 발을 한두 번씩 직접 어루만져 보셨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끝까지 사랑하신 모습의 첫출발이었다.

친히 사람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 발을 씻겨주시는 주님의 모습. 바로 그것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그 '발'이 어떤 발인가? 그 '발'은 조금 후면 우리 주님을 배신하고 뿔뿔히 흩어져 도망가버릴 그런 '발'이 아닌가?

성만찬과 세족식의 밤. 바로 그 밤에 예수께선 홀로 붙들려 가시게 된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씻겨주신 '발'은 그날 밤이 다 끝나기도 전에 주님을 버린 채 도망가버릴 그런 '발'이었다.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 갈 길로 흩어져 버린 '발'. 도망가는 데 사용되는 '발'. 바로 그것이 제자들의 '발'이었고, 우리 주님께서 '손'으로 손수 씻겨주신 '발'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을 때, 제자들이 그 "씻김 받은 발"을 가지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건 예수를 배신하고 팔아먹는 일이었고, 예수를 배신하고 도망가는 일이었다. 주님이 씻겨주신 발은, 다시 한 번 더 배신을 위해 땀내로 물들게 될 뿐이었다. 예수께서 씻겨주신 '발'은 그저 팔아먹고 도망가기 위해 사용될 그런 '발'이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조금 후면 다들 도망가버리고 심지어 자기를 팔아치울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주님은 모르셨을까?

그 분은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큰 배신을 당하게 될 것인지, 얼마나 깊은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껴야할지, 그 분은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한사람도 남지 않고 다들 떠나가 버릴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주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바로 조금 후면 일어나게 될 배신과 팔아치움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이제 씻겨주자마자 자신을 팔아치우러 대제사장들에게로 달려갈 가룟 유다의 발을 닦아주시면서 예수께서는 어떤 느낌을 가지셨을까? 이제 조금 후면 목숨 다해 주를 따르겠다던 맹세를 내팽개친 채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주님을 향해 등을 돌리고 동산 밖으로 뛰쳐 도망갈 베드로의 '발'을 닦아주시면서 우리 주님께선 어떤 마음이셨을까?

무엇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일까?

주를 팔아먹고 주를 배신하는 일에 주님이 씻겨주신 '발'을 제일 먼저 사용할 제자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이미 다 아시면서도 묵묵히 그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주님...

어떤 아내가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남편이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온다고 그러고는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그때, 남편이 어딜 가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날 밤 돌아오지 않을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내는 남편보다 먼저 남편의 외출준비를 한다.
신발장에서 남편의 구두를 살며시 꺼내들고서는 정성스럽게 남편의 구두를 닦아준다.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남편의 구두를 반짝거리게 닦아주고서는 잘 다녀오라고 나지막이 인사하는 아내의 모습...

그리고 조금 뒤 남편을 뒤따라나가 텅 빈 교회에 혼자 앉아 눈물로 기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쓸쓸한 아내의 모습... 그 아내의 가슴이 어떠할까?
만약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이의 가슴은 멍울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님의 심정이 바로 이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주고도, 결국엔 그 사람으로부터 배반당하고 배신당하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고 더 낮은 모습으로 섬겨주는 것. 바로 그것이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이며, 주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우린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는 내용을 읽을 때마다, 거꾸로 한가지 소망을 품게 된다. 그건 주님께선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 하실 것이라는 소망이다.

심지어 내가 나의 모든 각오와 다짐과 맹세조차 부끄럽게 만든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선 나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여전히 나의 발을 씻겨주시는 분이며 고개를 조아리고 그분 앞에 되돌아왔을 때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이미 다 용납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내 작은 어깨를 감싸안아 주실 분이다.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이유는, 내가 그분 앞에서 상급받을 만한 잘난 제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분의 '끝까지 사랑하심'이 우리의 '끝까지 배신함'을 덮어준 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인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오로지 하나. 그분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 뿐이다.주를 팔아먹고 주를 배신하고 내 갈 길로 맘대로 돌아다녔지만, 우리는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 그건 도망칠 내 발을 씻겨주시던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죄인인 나를 먼저 사랑하셨고 여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