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New life !
johnworld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05. 5. 21. 15:06 As it is

성만찬을 하시던 주님께선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을 말씀하셨다. 배신이 예언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그 사람을 밝힐테니, 그 놈을 축출하자"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제 그 놈만 없애면 내가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된다" 이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도 아니다.

주님께선 배언을 예언하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요 13:20)

예수께서는 "영접"을 말씀하시면서 배신을 말씀하셨다. "배신자"를 앞에 앉혀놓고서는 "영접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더군다나 성경은 예수께서 "민망해하셨다" 고 기록하고 있다. 민망해하시던 주님.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 후에, 예수께서는 떡을 떼어 소스에 찍어 가룟 유다에게 주셨다. 당시에는 떡을 떼어 소스에 찍어주는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행동이었다. 아무에게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선사하는 특별한 배려였다. 이 행동은 '사랑으로의 초대' 인 것이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신 것이다. 이것은 가룟 유다를 향해 직접적으로 주어진 마지막 고백이었다.

"지금 네 마음에 있는 불신을 내어버리고, 내가 너를 향해 선사하는 사랑을 받아주렴. 나를 영접하라는 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아다오"

주님께선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룟 유다를 향해 "너는 배신자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사랑 고백의 행동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가슴 쓰린 예언을 사랑고백이라는 '끝까지 사랑'에 담아두셨던 것이다.

가룟 유다가 얼마 후면 배신자가 될 것을 아시면서도 처음부터 그를 제자로 삼으셨고, 뻔히 팔아치우러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갈 것을 아시면서도 그에게 떡 한 조각을 찍어서 선사하시는 주님. 우리 같았으면 빵을 통째로 집어던지거나 쟁반을 집어던져도 시원찮았을텐데... 주님께선 오히려 부드러운 눈길로 그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셨다. 비록, 거절당하시긴 했지만...

성만찬의 그 자리는 가룟 유다 뿐만이 아니라 열두 명의 배신자들이 모여 '주님의 사랑고백'을 듣던 자리였다. 가룟 유다는 성만찬이 시작하던 순간부터 침울한 표정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혀 다른 표정의 제자가 한 사람 있었다. 바로 베드로였다. 배신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 베드로는 목숨을 버리더라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바로 그날 밤,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되지만 말이다. 아마도, 예수께선 베드로에게도 가룟 유다와 마찬가지로 떡을 떼어 소스에 찍어주셨을 것이다.

베드로도 유다와 마찬가지이다. 사랑의 고백을 들었지만, 결국 주를 부인하고 도망가 버린 사람... 나머지 제자들은 어떤한가? 그들은 다른 사람들인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를 버린 사람들이 되었다. 어떤 제자는 그냥 도망치기 바빴고 어떤 제자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어떤 제자는 고기나 잡으로 가야겠다고 고향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들은 주님의 사랑고백을 들은 사람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주님의 사랑고백을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을 되돌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게 떡을 찍어주시면서 그윽하게 바라보시던 주님의 사랑 가득한 눈동자를...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은은하게 말씀하시던 그 분의 음성을... 나지막하게 "영접하라"고 말씀하시던 주님. 안타깝고 민망해하는 마음을 품으셨던 주님. 그리고 그런 간절한 사랑을 담아 떡을 찍어 친히 유다에게 주시면서 사랑을 고백하시던 주님. 유다의 배신을 향해 주님께서 보이셨던 태도는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배신의 예언이 들려지던 그 장면의 마지막 부분을 성경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유다가 나갔다" 그리고 이 설명 앞에 비록 짧지만 아주 인상적인 표현이 덧붙여져 있다. "바로 그 조각을 받고서..."

가룟 유다는 자기가 갈 곳으로 가버리기 위해 주님과 함께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주님이 특별히 선사하는 떡 조각을 손에 쥔 채, 그는 떡을 받아쥔 바로 그 손바닥에 배신의 대가로 주어지는 은전을 받아쥐기 위해 자기 갈 길로 가버렸다.

이제 주님은 대제사장들에게 팔린 몸이 되었다. 몽둥이를 든 체포집행자들이 아직 도달하지 않았을 뿐, 주님은 비참하게도 제자에게 팔린 몸이 되어버렸다. 거절당한 구애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셨다. 납득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도다!
또한 하나님도 인자를 통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요 13:31)

지금 주님의 모습이 어떠한가? 왕관을 머리에 쓰고 왕의 홀을 손에 잡고 온 천하만민을 발 아래 두고 통치권자로 등극하시는 모습인가? 아니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모습인가?... 제자조차도 등을 돌려버린 상황에 처한 것이 지금 주님의 모습이다. '지금'은 배신이 일어나고 있는 시간인 것이다. 그 누구도 빠져들고 싶지 않은 그런 비참한 현실에 처하게 된 것이 주님의 모습이다.

주님의 현재는 "배신"과 "팔려감"이었고,
주님의 미래는 "십자가"였다.

그 상황 속에서, 그런 모습을 알고 계시면서도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라고 선언하셨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얻으셨다!"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본인 스스로 "그 지극히 혐오스럽고 절망스러운 전락의 상황'을 가리켜 "영광"이라고 규정하신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영광이란 말인가? 정말로 이게 영광인가? 배신당하고 팔려가고 심지어 죽음을 당해야 하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저 축복하고 사랑하고 안아주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인가? 차라리 우리가 늘 생각하듯이,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사회적 지위도 그렇듯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었으면 좋겠다. 잘먹고 잘살게 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면, 좀 어렵긴 해도 해볼만한 일이 아닐까? 구미당기는 일이 아닌가? 손해볼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까...

그런데 예수께선 지금 "배신, 섬김, 끝없는 사랑, 그리고 십자가"를 놓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정말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인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므로, 이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배신당하고 팔려가고 죽임당하는 것. 비참한 절망 속에서 외로움을 씹으면서 땅바닥을 긁고 앉아있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곤혹스러움과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외치고 싶다.

주님 이런 거 말고, 다른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하시면 안됩니까?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고, 병든 사람이 병고침을 얻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땀의 대가로 신분상승을 이루고, 남들보다 빨리 승진해서 높은 자리에 앉아 섬김을 받고 그 누구도 배신할 수 없는 파워를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 팔려나가는 사람을 구원해줄 능력을 갖고 있고 심지어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실력자가 되는 것.
이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하시면... 그래야 예수 믿는 사람도 살맛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왜 이런걸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저 역시도 그런 길을 걸어가야 합니까? 고생은 주님이 하셨으니 저는 좀 낙을 누리면서 살면 안 된단 말입니까?

하지만, 주님께선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너 역시도 나의 그런 사랑을 받았단다. 네가 태어난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란다. 하나님의 영광은,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오해받고 배신당하며, 선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수로 갚음 받고 팔려나가며, 살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주어야 하는 그런 일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거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용납해주는 것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란다. 한사람을 품어주되 끝까지 품어주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란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란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