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중에서...1(필립 반 덴 보슈 지음)
컽으로 보아서 지상에서의 행복에 대한 권리 주장은 최근에 확산된 현대적인 생각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서구 문명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 4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개인의 행복을 인간 삶의 목적으로 삼았던 문화가 있었다. 아마도 개인의 행복은 인류가 원시부족사회에서 벗어나면서 나타난 개인 의식의 출현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리라.
원시부족사회에서는 집단의 생존과 힘만이 중요시되었고, 개인은 그 자체로 중요성을 지니지 못하였으며, 개인은 종족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았다. 그 뒤 고대 그리스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참다운 선이란 단지 집단의 공동선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집단의 공동선과 개인의 행복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행복을 법의 준수와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라는 문제들을 놓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지적 모험을 주도했던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몇몇 사람들의 사상은 독창성과 논리적인 힘을 갖고 있어 오늘날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다름 아닌 소피스트들이다.
소피스트들은 '예지의 스승들'로 일컬어지며 그들의 이름도 이로부터 연원한다. 소피스트들은 물질적 대가를 받고 강의를 통해 유복한 젊은이들에게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자 했다. 이들의 가르침이 지니는 유용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 가지 밝혀둘 부분은 고르기아스(기원전 487~380)나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5~411)같은 소피스트들의 사상은,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희귀한 글의 편린보다는 플라톤의 저작(이들을 자신의 대화 상대 인물로 등장시킨)을 통해 더 잘 알려졌다는 점이다.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스트들을 철학의 적수로 여기고,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논박하고, 심지어는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소피스트라는 이름에 경멸적인 뜻을 부여하였다.
누구보다도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스트들의 사유 방식이 대화에서 상대방을 혼동으로 몰아넣는다면서 그 결함을 지적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논리학의 기초를 세움으로써 오늘날 소피즘(소피스트 사상)을 부정확한 사유로 인식하게 했다. 어쨌든 위대한 사상가들의 적수로 지목된다는 자체가 명예로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소피스트들을 논박하기 위해 동원된 지적 작업들이 공격적이고 방대하였음을 고려할 때, 소피스트들의 사상 역시 비판하기 쉽지 않은 철학 사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각이 지니는 가치를 살펴보도록 하자.
절대 권력은 행복의 조건
소피스트들은 인간 삶의 목적이 행복에 추구에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현대 사상과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모든 욕망을 만족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욕망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소피스트들의 답변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탄탄한 논리를 지닌다. 돈으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으므로 최대한의 부를 얻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항상 방해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절대 권력이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가 매우 작은 욕망마저도 다른 모든 사람들을 통해 채울 수 있다면, 비록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 할지라도 우리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 까닭은 사람들이 약하고 순종적이며 수모만 당하는 자보다 힘있는 자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해지기 위해서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폭군이 되어야 한다.
소피스트들은 오늘날의 인간들보다 훨씬 더 지적으로 영리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돈을 얻는다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그들은 기업의 사장자리와 그에 걸맞는 보수(평범한 회사 직원인 그들에게 엄청난 쾌락을 주기에 충분한 것처럼 여겨지는)를 얻는다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늦게까지 직장에 남아서 '무지막지하게' 일하고 사장에서 충성을 보인다.
반면 이들은 개인(과 가정) 생활을 게을리하고 동료 직원들을 모함하고 짓밟으면서 몇 년 동안 충성을 다한 다음 기어코 오랫동안 군침을 흘렸던 자리를 차지하고 많다. 그러나 그들은 곧 좀더 많은 수입, 더 큰집, 큰 자동차, 해외 여행과 바캉스, 더 많은 권력(타인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이 진정한 행복을 얻는 데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까닭은 언제나 그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사람, 즉 새로운 우두머리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꾸 새롭게 나타나는 윗자리를 공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매우 심각한' 사람들의 불쌍하기 그지없는 삶의 참모습이다.
이미 소피스트들은 '더 많은' 돈과 권력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충분치 않으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최대한(절대적인)의 부와 권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꿰뚫어 보았다. 이러한 논리를 통해 우리는 절대 권력, 폭군적인 권력이 바로 모든 인간의 은밀한 욕망이란 점을 인정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온갖 욕망을 통해 행복해지기를 원하므로, 행복에 이르는 수단인 절대적인 힘을 은밀하게 욕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욕망 자체를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지 못하므로 대부분의 경우 무의식의 상태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겸손하고 괜찮은 사람들은 나의 주장에 다음과 같이 논박할 것이다. 그들은 전제적인 권력의 욕망도 가지고 있지 않고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나 나는 솔직히 이들에게 '이 세상에는 이들이 사랑하고, 사랑받기 원하는 대상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러한 대상이 있다면, 이들은 사랑받고자 하는 힘 - 거의 마술적인 힘을 갖기 원할 것이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막히게 멋있는 곳에서 마치 백만장자처럼 바캉스를 보내고 싶지 않을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돈을 갖기 원하지 않을까? 또 뜻하지 않은 경쟁자가 나타난다면 그를 없애기 위해 마술에 가까운 힘을 원하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거나, 인간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욕망은 바로 절대 권력으로 향한 욕망이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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