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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14. 08:45 개똥철학

출처 : http://alric.egloos.com/723777

철학입문 서적 추천을 부탁한다는 댓글이 들어왔다. 웃. 어쩌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철학 입문 서적이란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완곡한 표현이 아니라... 서점에 자주 가는 편인데도, 진짜로 못 봤다. 보통 고등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철학/논술서는 철학책이 아니라 수험서일 뿐이고, 긍정적인 삶을 강요하거나 삶의 철학 운운하며 일정한 행동양식을 전파하는책들도 역시 철학책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그냥 제목에 철학이 붙어 있을 뿐인 수필집이다. 물론 서점을 돌다 보면누구누구의 철학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다거나, 하룻밤이면 충분하다거나 하는 책들도 있지만.그런 책은입문하는 사람에게 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개괄서는아이러니컬하게도 그동안 배운 것들을 간단하게 정리하거나,그동안 공부한 것을 커다란 맥락으로 살펴보고싶어하는 전공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이런 책들. 재미있는 캐리커쳐와 흥미로운 제목으로 독자들을 유혹하지만... 철학을 전혀 공부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오히려 전공자에게 적당한 책이다.) 일단 용어가 익숙치 않아 곡해의 여지가 많고, 잘못된 이해를 계속 믿어버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철학입문은 되도록이면 독학하기보다는, 대학교의 「철학입문」교양 강좌 청강을 권한다.



그렇다면 철학 입문을 위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어쩔 수 없이, 나는 철학사를 권장한다. 물론 철학사는 철학을 말하고는 있지만, 철학책이라 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철학사는 지도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 이런 것이 있고, 저기에 저런 것이 있다. 대충 이런 지형을 이루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의학을 배운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언젠가는 분과를 해야만 한다. 외과, 내과, 소아과, 신경정신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등등등. 결정을 위해서는 먼저 각각의 분과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를 전체적으로 간단하게라도 알아야 한다. 철학사는 당신이 어떠한 철학을 하고 싶어하고 어떤 사유를 선호하는 지를 알아차리게 될 계기를 제공하기에 적당한 것이라 생각한다. 람프레히트의 철학사가 너무 두꺼우면 윌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도 지도용으로 좋을 것 같다.


철학사를 읽은 후에, 그리스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면 이 책을 권한다. 박종현 선생님의 책인데 이정도로 훌륭한 책, 정말 보기 힘들다. 보통 '입문'을 제목에 달고 있는 책들은 철학사를 죽죽 늘어놓는 것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중요한 개념들을 일일이 짚고 넘어가고 있는데다가 마지막에 찾아보기 까지 두고 있어 공부하기에 정말 좋은 책이다. 서양철학의 태동이 된 그리스 철학을 공부해두면, 수많은 복잡한 철학 용어들을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테크트리... 를 찍는다 하기엔 좀 뭣하지만. 서양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플라톤은 반드시 한번쯤은 공부해 보아야 할 서양철학의 거인이다. 플라톤이 학문을 하는 태도, 몇 가지 주요한 개념들을 두고 많은 것들을 꿰어내는 능력은 책을 읽는 철학도에게 많은 도움이 될 뿐더러. 많은 학자들이 플라톤의 글을 인용하거나, 의견을 빌려오거나, 비판하거나 하기 때문에... 철학 공부를 할 때 플라톤을 모르면 마치 슈퍼주니어나 원더걸스를 모르고 TV 연예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같은 아리송한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 꼭 읽어야 한다.


아니 나는 서양철학보다는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은데? 하는 경우라면 윤무학 선생님의 순자를 추천한다. 말 그대로 순자인데... 순자가 쓴 순자는 뒷부분에 나오고, 앞부분은 윤무학 선생님의 전반적인 중국철학사 강의가 이어진다. 정말 좋다. 개인적으로 중국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지도로 삼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유교를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는 요즘의 풍조를 되짚어 보기에도 좋은 책.


버트란드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이상한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영미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보통 이 책부터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유명하고. 천재학자 러셀이 쓴 책이고. 내용은 명불허전. 철학입문서로도 많이 알려졌는데... 내가 보기엔 절대 입문서 아니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철학에 입문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지, "철학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철학사부터 읽고 차근차근 접근하길 권한다.



여기까지 읽고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는 철학을 그렇게 전공자처럼 공부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식적으로... 그냥 영화나 보고 정치 같은 걸 봤을 때... 관련된 철학자들의 의견 같은 걸 떠올리기를 바라는 것 뿐인데." 억. 만약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철학책보다는 이차서적을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나는 철학책을 볼 때에는 되도록이면 '천재가 직접 쓴 책'을 보려고 하는데, 왜냐하면 어느 유명한 철학자가 쓴 책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쓴 책치고, 원래 책처럼 괜찮은 책이 나오기란 무한히 불가능에 가깝다는 개인적인 믿음 때문이다. 물론 대가가 대가에 대해 쓴 책은 괜찮은 편이다. 하이데거가 니체에 대해 쓴 책이라거나. 들뢰즈가 플라톤에 대해 뭐라고 한 것. 그런 것들은 뛰어나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철학 책을 고를 때에는 플라톤이나 하이데거나, 니체나 쇼펜하우어, 푸코가 직접 쓴 책을 번역한 것을 읽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이런 책들은 기본적으로 번득이고, 뛰어나고, 엄밀하며, 천재적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이차 서적을 되도록 피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대충 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차 서적은 보통 엉망이거나, 매우 좋다. 그런데 매우 좋은 이차 서적은 매우매우매우 드물다. 이런건 대학교 교수님들께 추천을 받아 사는 것이 안전하다. 아니면 존경하는 교수님들 책을 골라 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럴 수 없을 때에는 옮긴이 약력을 꼼꼼히 살피고, 되도록 오랜 시간 공부한 학자분이 번역했거나 저술한 책을 고르길 바란다. 그런 책들이 '안전'하다. 또는 책의 뒷면을 보아서, 몇년도에 처음 출판됐고 몇번째 재판이 나왔는지를 보는 것도 좋다. 좋은 책은 꾸준히 재판이 나온다. 예를 들어 앞서 추천한 람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의 경우 1963년도에 초판이 나와, 2005년 개정판 22쇄가 나왔다. 이런 책은 많은 전공자들과 학자들이 선호하는 책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차 서적에도 좋은 책은 있다. 개인적으로는 철학아카데미의 이정우 선생님의 「탐독」과 같은 책들이 그런 경우라고 본다. 물론 이건 철학책은 아니지만, 철학자 이정우 선생님의 글을 열심히 읽다보면 철학이라는 학문의 분위기가 대충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이 책은 언제나 지인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다. 꼭 철학 입문이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책이다.


예술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역시 이정우 선생님의 책이다. 하이데거 예술 철학을 기본으로, 현대 회화의 여러가지 면모를 날카롭게 집어낸다. 와, 몇년 간 본 예술철학 중에서 가장 적당히 어렵고, 최고로 재미있게 읽은 예술철학서다.





철학책을 고를 때에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주의해야 한다. 절대적인 건 아니고, 내 경험이다.


1, 쉬울 것 같은 책.

2, 표지가 예쁜 책.

3, 빨리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


철학책은 어렵다. 한 명의 학자가 평생 연구한 개념들이 담겨 있는데, 그것을 몇 분만에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사기다. 철학을 전공하는 수많은 학생들은 한 권의 책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몇 장의 논문을 이해하기 위해 적어도 한 학기에서 몇 년의 시간을 공부한다. 그것도 교수님께 도움을 받아가며. 쉬울 것이라 유혹하는 책에 속지 말아야 한다. 쉽게 얻은 것은 언제나 무언가 문제가 있는 법이다. 되도록이면 고전을 읽기를 권한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