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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 6. 01:39 스크랩

출처 : http://v.daum.net/link/2391967

혜민아빠 인터뷰이야기/아버지를 생각한다 2009/01/19 09:09


<아버지를 생각한다> 란 주제를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여섯 번째 인터뷰는 '딴지 총수 김어준‘ 이다.

딴지 총수 김어준은 그 동안 여러 매체들을 통해 20, 30대 젊은이들에게 해오던 인생 상담 질의응답을 묶어서 최근에 ‘건투를 빈다’는 책을 냈다.
‘어떤 자격증도 없는 야매 상담가지만 어떤 가방 끈 긴 상담가보다도 도움을 준다’는 독자 서평처럼 그의 거침없는 직설적 화법은 나름 독특한데, ‘아버지’에 관해서도 나름 직격탄(?)을 맞보기 위해 삼청동 한 와플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Q. 상담은 나름대로 연륜이 있고, 경험도 많은 분들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그 사람의 고민을 풀어주거나, 해결해 준 것 같지는 않고요. 대부분의 상담이 상담자는 문제가 있는 사람, 상처받기 쉬워서 위로하며, 조심스럽게 동정도 좀 깔고, 다독거리면서 다 잘 될 거야 괜찮아 그런 것이 상담의 기본인데, 저는 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말하는 뜻은 없고, 단지 네가 왜 고민하느냐, 고민하는 이유가 뭐냐 하는 거를 다루죠. 제가 60이 아니어도 그 이야기는 할 수 있죠. 사람들이 고민하는 본질적 이유를 같이 이야기하고 나면 나머지는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죠.





Q. 아버지에 관한 추억이 있다면?

저희 부모님들이 대단한 교육철학이 있다고 보지는 않으나. 예를 들어 이런 분이셨어요. 맛있는 것을 같이 먹으면, 보통 부모님들이 맛있는 것을 밥에 얹어 주기도 하는데, 저희 부모님은 당신들이 먼저 다 드셨어요. 왜냐면, 너희들은 먹을 날이 많지 않느냐 그런 거죠. 기본적으로 그러셨고,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저는 그게 당연한 것인지 알았죠. 예를 들어 전화요금이 많이 나오면 부모님들이 대게 요금 용지를 보여주면서 혼을 내죠. 근데 전 혼나 본적이 없어요. 다만, 그걸 내가 내야 했죠. (웃음)

제가 일찍 독립해서 따로 나와 살았는데, 어느 날 집에 가서 아버님한테 ‘결혼해야 되겠다' 했더니, 첫 마디가 '누구랑?'이 아니라 한마디로 '언제?' 였죠. '누구랑'은 제가 결정하는 거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시는 거죠.

어머님은 도시락도 제대로 안 싸주셨는데, 저도 사실 공부 하는게 유세인가 했어요. 어머님은 유치원을 하셨는데, 당신도 바쁘고 나도 바쁜데, 내가 하는 일이 특별히 더 대단해, 부모가 피곤하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 주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게, 자연스럽지 않다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이게 자랑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모가 저를 이렇게 키우다 보니 저도 그냥 내가 내 맘대로 알아서 한다, 결론적으로 내 인생 내가 책임져야 한다 하고, 한번도 말로 “너 인생은 너의 것이야”라고 말씀 하시지 않았으나, 그렇게 자라버린 거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에 중요한 사건 하나는 - 어느 날 고등학교 다니던 중에 시험치고 일찍 집에 왔어요. 고등학생 남자와 아버지하고 할 말 없잖아요. 근데, 그날따라 밥상을 차리는데, 보통 남자들은 반찬을 냉장고에서 껴내서 차려주곤 하잖아요. 근데 이 양반이 갑자기 평소에 안 하던 삼겹살을 굽더군요. 한번도 그런 것을 본적이 없는데, 고기를 특별히 좋아하시지도 않는 분이.... ‘이 양반이 왜 삼겹살을 굽나’라고 혼자 생각했으나, 뭐 ‘먹고 싶나’ 보다 생각하고, 밥을 마주 앉아서 먹었죠. 근데, 밥을 다 먹을 때 쯤 되어서 갑자기 숟가락에 고기를 탁 얹어주는 겁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한번도 그래 본적이 없던 분이.... 제가 그 짧은 순간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평소 아들에게 이렇게 해보고 싶었구나 싶었죠. 벼르다가 밥을 다 먹기 직전에 (웃음) 딱 한번 해 본거예요. 눈물이 핑 돌았는데, 그렇다고 서로 뭐 아버지하고 울고 그럴 수 없잖아요. 서로 모른척하고 밥 다 먹고 제방으로 들어왔는데, 밖을 내다보니까 아버님이 휘파람을 불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아니라 40대 초반의 한 남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5~6살 이후 기억하는 한, 지지고 볶으며 애들을 키우고, 와이프(엄마)하고, 집 마련하고, 먹고 살며, 그런 굴곡들을 옆에서 봤잖아요. 그런 40대 남자가 자식 2명에 와이프하고 사는 모습 중에, 뭔가 즐거운 일이 있어서 휘파람 부는 걸로 보였어요. 아버지가 아니라 처음으로.

그러니까 당연히 동시에 엄마도, 엄마가 아니라 이런 남자하고 사는 여자로 처음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론 한번도 요구하거나 야속해 하거나 기대본 적이 없었죠. 그때는 몰랐는데 커서 보니까 그때가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한 순간이었어요.

근데, 이런 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남들한테는 못했어요. 왜냐하면 '난 아버지가 남자로 보여, 엄마는 여자로 보이고' 이렇게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그남자, 그여자'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데, 그런 걸 친구들이 못 받아들이더군요. 내가 그 분들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20대에는 그래서 이야기를 멈췄죠. 내가 싸가지 없는 놈인가 보다 생각하고.... 나이를 더 먹고 30대 지나가다 보니 그때가 정서적으로 독립한 순간이었어요.
저는 부모가 친구 같고, 귀엽고, 인간 대 인간으로 생각이 드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걸 못 받아들이더라구요. 왜 그러냐면 처음부터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만 갔기 때문에 그래요. 명절이라서 차 밀리면서도 꼭 내려가야 한다는 식의 효를 저는 별로 추구하지 않습니다.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사회적 기대를 따르는 그런 효도 말이지요. 평소에 잘 하지요. 저는 다른 효자들보다 더 건강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지금 어머님하고 어떻게 대화를 하나요? (아프신 걸로 아는데...)

정확하게 의사소통이 안 될 때가 많죠. 말을 잘 못하니까. 근데 이젠 대충 알아들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똑 같이 대했기 때문에 다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내가 더 건강하고, 내가 활발하고, 내가 돈도 더 많이 벌고 하니, 더 많이 지원할 뿐, 본질적으로는 똑같죠.

'부모와 친구가 되고 싶은데 친구가 되지 못 한다' 그게 자식의 아쉬움이고 부모의 아쉬움이고 그런데, 그건 애초 가족에 내부 규범을 쌓아갈 때, 관념적으로 부모의 사항과 자식의 사항을 양분하여 쌓았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관념적인 삶을 깨고 나와서 자연인으로서 한 사람과 한 남자로서 대화를 하지 못하는 거죠. 어느 순간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편하다 아니다 문제가 아니라 너는 자식이고 나는 부모고, 이 관계가 대단히 강력한 윤리규범으로 우리나라에 있어왔고, 그 규범 하에 성장한 사람이 서로를 자연으로 보는 데 미숙해요.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자기 약점도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대화하고, 그런 것이 힘들다 이거죠. 자기는 그렇게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학교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도 한 사람의 인간에 불과해' 라고 깨고 나오기는 힘들잖아요. 선생님은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선생님의 역할을 해야 하잖아요. 그걸 옳다 그르다 그러기 이전에 짜여진 역할 속에서 자기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 역할을 처음부터 규정해왔다면 그 역할을 깨기가 어렵다는 거죠. 저 같은 경우에는 다행히 부모들이 그런 전통적인 의미에 부모역할을 하기 보다는 그냥 놓아 기르셨고, 있는 그대로 자라는 것을 봐주셨기 때문에 대화가 잘 된 것 같아요. 친구가 되는 데는 이게 가능한 방식인데, 평소 그렇게 자라지 않았으면, 부모도 자식도, 어느 순간 억지로 그렇게 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Q. 책에서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해라,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 없이는, 평생을, 남의 기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쓰고 만다"라고 언급했던데, 살면서 쉽게 버려지지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결국은 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사람은 남을 위해, 인정받기 위해 사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남을 위해 산다기 보다는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자기가 존재가치가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되는 심리 구조는 영원히 버릴 수 없는 거라고 봐요.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 한, 혼자서 살지 않는 한, 삶의 인정은 어쩔 수 없는 삶의 본질적 단면이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이, 부모가 자식의 삶 전체를 보호해 주고, 대신 선택해 주고, 이런 것을 마치 잘하는 것인 냥 되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식입장에서는 만족시켜야 될 사람이 부모밖에 없는 삶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게 사실은 어린아이의 세계인데, 아주 어린아이가 엄마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재롱을 피우면 부모가 즐거워하니까 계속 피우게 되는 것과 같죠. 어릴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배우는 거니까 부모가 모델일 수밖에 없고, 부모 기대를 충족시켜주는데, 어릴 때는 이것이 내 욕망인지, 부모욕망인지 구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부모 즐거워하라고 내가 재롱을 피우는 것, 부모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거죠. 근데, 그게 분리가 안 되면,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게 내 욕망에 의한 것인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지 분리가 잘 안 되어요. 어떤 시점에서 분리를 해야 하는데, 그래야 자기 욕망에 대해 알게 되고, 자기 욕망을 이해해야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이 되는 겁니다.

20대가 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부단하게 노력하는 것이 다들 그런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야 할 시점,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에너지를 점점 더 줄이고, 자기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를 깨달아야 되어요. 근데 여기서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인데, 버리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것을 알지만, 내가 의식적으로 알면서 거절해야 하는 거죠. 본인도 그리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것은, 그건 실망시키는 거죠. A도 있고, B도 있는데, A를 다들 원하지만 내가 B를 원하는 거라서 B로 의식적으로 가겠다고 선택하는 것, 이런 것입니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자신의 길을 갈 때 부모가 실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몫이예요. 부모가 감당해야지요.




Q. "자식 위해 살다가 자식 불행하게 만든다" 는 말은?


그게 맞는 말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살았다는 것이 삶의 선택을 할 수 없게, 무능력자로 만든다고 봅니다. 삶에서 선택을 할 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건데, 삶이라는 것이 끊임없는 삶의 선택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선택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는 건, 자기 아버지 돈이 많다 해도, 좋은 회사를 다녀도 망망대해가 그 사람 앞에 있는 거예요.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들을 맞이할 텐데, 그 앞에서 항상 불안하고, 내가 잘하는 건지 모르겠고, 부모한테 물어봐야 하고, 남한테 물어봐야 하고, 그렇게 되는 거죠.


Q. 20대 아들이 알게 된 아빠의 불륜, 어떻게 해야 할까요?(책에 비슷한 사례가 있어서 돌발 질문)

아빠의 불륜은 엄마의 문제죠. 아빠의 불륜은 본질적으로 엄마의 남자 문제죠. 나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세상 누구도 개입할 권한도 없고, 개입할 만큼의 정보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부모 두 사람의 역사와 교감했던 감정과 그들의 갈등을 제 3자가(자식도) 그 어느 누구라도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만약 제가 아버지의 불륜을 알았다 하면, 엄마가 안쓰럽겠죠.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서 화를 낼 수 있겠죠. 거기까지이죠. 내가 자식으로서 화도 나고, 엄마가 안쓰러우나, 그러나 그건 엄마, 아빠가 선택할 문제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내가 자식이라고 해서, 내 아버지의 다른 사랑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물론 싫어할 수는 있지요.



Q. 부모 잔소리가 심해요.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하기 때문에 짜증이 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부모의 잔소리는 한편으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자식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니까, 자식을 위한 길이니까, 끊임없이 말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식이 그걸 듣기 싫어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유사 이래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생각해요.


Q. 아버지와 포옹은 한적 있나요?

아버지가 아플 때, 몇 번 있죠. 부축하는 거. 그때를 제외하고는 끌어 안고 그런 적은 없어요. 어머니하고는 자주해요. 아버지하고 신체적 접촉한다는 것, 사실 친구들끼리도 나이 먹고 나면 거의 안 해요, 기껏해야 술 먹고 어깨동무 하는 것뿐인데, 수컷들이 애초 정서적, 신체적 접속이 어색하죠. 자식이라고 해도 다를 게 없다고 봐요.


Q. 20~30대 직장인들에게 어려운 경제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격려 한마디?

이분들의 먹고 사는 것을 대신 해결해 드릴 수 없고요. 최근 경기가 어려우니까 직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직장에 관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제 경험으로 2가지 밖에 없어요.
첫 번째는 직장은 거래다. 내 노동을 지불하고 대가를 받는 척도이죠. 직장을 거래라고 생각을 많이 해야 된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어차피 삶이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이 더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비정규직의 부당한 대우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삶이 비정규직이라는 거죠.

이런 2가지 법칙 하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하던 일 멈추고 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게,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지방에 있는 거든, 외국에 있는 거든, 뭐든 간에, 대우도 자빠지는데, 스스로 불안하고 불안정하니까, 가능하면 튼튼하고, 오래가고, 계속 지속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봐요. 내 삶도 제한적이고, 기껏 해봐야 30년밖에 안 되요. 30년을 한 가지 일만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얼마나 억울한가, 물론 그 대신에 좀 더 안정적인 삶이란 것을 얻을 수 있죠.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되요. 그게 아니라 인생 한번을 그렇게 다 쓰고 마는 것이 아깝거든, 끊임없이 직장은 거래라고 생각하고, 내 삶은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사고와 마음이 가고, 그런 곳에 끊임없이 도전해봐야죠.

전, '한 우물을 파라'는 것은 웃긴 거라 봐요. 이 시대에 한 우물 어떻게 팝니까? 뭐를 알아야 파지, 어떤 사람인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나를 기쁘게 하는 게 뭐고, 내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를 몰라요. 근데, 한 우물만 엉뚱하게 파면, 시간을 낭비하는 거죠. 여러 개를 파야죠. 이것도 파고 저것도 파고, 아니면 다른데 가고 말이죠.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요즘은 시대착오적인 말 같더군요.


-- 인터뷰 참여 해주신 김어준님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이번 12월 부터 김용전작가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아버지 " <아버지를 생각 한다> 인터뷰 시작하며" 주관으로 진행하는 행사이다.
두번째 진행으로 개그맨 이홍렬님과 함께 했으며, 계속해서 인터뷰는 진행 될 예정이다.
만약 인터뷰에 참여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posted by joh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