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16033.html
요즘 몇해 전 이맘때 한 고등학생에게서 받은 편지가 자주 떠오른다. 중학생 때부터 내 글을 읽었다는 그는 아버지가 진보진영에서 활동하는 잘 알려진 교수라고 했다. 그는 특별한 아버지를 둔 덕에 자라면서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사회와 역사를 보는 나름의 안목을 가질 수 있었고 삭막한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숲이 가까운 교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은 자연과 함께 자라야 한다는 아버지의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중학생이 되어 아버지의 사회활동을 좀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얼마 안 된 어느날 밤 아버지가 적이 무거운 얼굴로 그러더란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대학입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지. 엄마하고 의논했는데 아무래도 이 동네에선 어려울 것 같아서 강남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그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교육문제에 그런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제 아버지가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인 서울’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는 친구들을 두고 혼자 강남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살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 했다. “아버지는 저를 위해 그러셨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느낍니다.” 그는 나에게도 두 아이가 있는 걸로 안다며 대학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었다. 난감했다. 나는 아이들과 이미 대학엔 꼭 가지 않아도 좋다는 합의를 한 바 있긴 하지만, 그걸 밝히자니 ‘나는 네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야’라고 유세하는 꼴 아닌가. 나는 그의 아버지가 이중적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도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그런 선택을 했다면 진보진영의 근래 형편으로 보건대 오히려 ‘최후까지 버틴’ 편이라 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현실적인’ 이유 또한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제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해도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한순간에 부수어도 좋을 만큼 대단한 것일까? 내가 알기론 인간의 삶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아버지는 아이가 스펙을 쌓아 자본의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진보적 엘리트로 성장하여 자신처럼 사회에 기여하길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삶의 방식을 좇는 건 그 삶이 옳아서만은 아니다. 그런 삶이 멋지게 느껴지고 존경심이 들 때 비로소 그 삶을 좇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제 아버지를 비롯한 진보 지식인들의 말을 ‘입으로만 저러지’ 냉소부터 하게 되어 버렸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 아니할 말로, 차라리 그 아버지가 막돼먹은 극우 꼴통이었다면 그는 반항심에서라도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몇번을 고쳐가며 힘들게 답장을 썼다. “무엇보다 나 또한 한 아버지로서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다는 말이 참 아프네요. 그러나 그보다 더 슬픈 일은 님이 이 일을 통해 고작 아버지를 비롯한 진보 지식인들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만 얻게 되는 걸 거예요. 나는 이 일이 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지배하는 시스템, 즉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대체 얼마나 강력한 것이기에 아버지 같은 분도 흔들리는 걸까, 질문하는 계기가 되길 더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래요. 괴물이 강력한 만큼 괴물의 정체를 밝히고 그 괴물을 넘어서는 행로 또한 길겠죠. 그 긴 행로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도 회복되길 기도할게요.”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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