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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9. 21:46 As it is

출처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2241224&cp=nv


[미션라이프] 세계적인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G Cox·80)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교수가 한미라 호서대 교수와 국민일보 창간 21주년 기념 인터뷰를 가졌다. 한 교수는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 하버드대 방문학자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0월 29일, 11월 12일과 16일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세 차례 이뤄졌다.

◇한미라 교수=국민일보를 대신해 하버드대에서 교수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신 것을 축하드린다. 지난 9월 6일 교수님이 하버드 야드 교정에서부터 신학대학원이 있는 앤도버홀까지 축하객들과 함께 행진하실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및 하버드대 전 공동체에 있어 교수님의 은퇴식은 역사적인 사건인 것 같았다. 그동안 교수님을 지켜보았는데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언제나 즐거워하시는 것 같았다. 44년을 하버드대에서 가르치셨는데 정년을 맞이하시는 개인적인 감회가 있으시다면.

◇하비 콕스 교수=정확히 말하면 나의 은퇴는 진행형이다. 3년 전부터 점진적으로 은퇴를 하고 있었다. 3년 전부터 한 학기에 2과목씩(3학점 1과목을 하버드대에선 하프 코스(half course)라고 부름)을 가르치다가 내년 봄 학기(하버드대는 1월 25일 경 개강해 5월말까지 계속됨)에는 1과목만을 가르친다. 점진적인 은퇴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갑자기 정년을 맞이해 정신적 공황상태를 맞이하는 것보다는 훨씬 덜 충격적인 것 같고 은퇴한 많은 친구들이 또 그렇게 권유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은퇴를 서서히 해나가기 때문에 실제로 내가 은퇴자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은퇴와 동시에 갑자기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라지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다고 한다. 정년이라는 제한에 걸려 어제까지 유능한 교수가 갑자기 모든 사회 활동을 그만 두는 것은 대학으로서는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또 풍부한 경험이 있는 교수 자원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나이가 들면 좀 더 지혜롭게 되기 때문이다. 젊은 학생들에게는 그런 교수들이 필요하지 않는가? 점진적으로 강의 시수를 줄여가면서 은퇴할 경우 젊고 능력 있는 교수들이 보다 빨리 강의할 기회가 주어지게 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한 결정은 물론 학교 당국이 허락해야 가능하다. 모든 교수들이 다 이런 형태로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한 교수=하버드대에서의 교수경험에 대해 몇 가지 질문하겠다. 먼저 교수님의 첫 번째 명저 ‘세속도시’로 인해 얻은 명성이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가. 만일 그렇다면 하버드대 교수가 되고자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는가.

◇콕스 교수=‘세속도시’(1965년)를 출판한 해 하버드대 교수로 청빙 받았기 때문에 연관성이 분명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대학 교수 중 한 사람이 원고상태의 내 책을 읽은 것이 실질적인 청빙의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나는 이 학교에 오기 전 두 대학에서 가르쳤었다. 하나는 오하이오주 오버린칼리지(Oberlin College, Ohio)이고 다른 하나는 메사추세츠주 앤도버 뉴튼 신학교이다. 처음엔 템플대에서 교수가 아닌 교목으로 시작했다.

사실 하버드대 교수로 청빙 받을 만큼 인정받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학의 교수가 되고 싶어 하지만 원대로 되지 않는데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많은 교수들처럼 대학원 시절에는 박사학위 논문을 정말 열심히 썼고, 힘든 종합시험도 온갖 힘을 다해 준비해 합격했다. 내 아내 니나는 여자대학인 웰슬리칼리지(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모교) 역사학과 학과장인데, 현재 은퇴하는 교수 자리(21세기 미국역사)에 212명이 원서를 냈다고 한다. 교수 임용을 원하는 신청자들이 많기 때문에 아주 철저하고 공정하게 선발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미국에서는 현재 엘리트 교육을 받은 자들이 아주 낙후된 지방의 작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소위 명문대 교수 자리는 제한돼 있고 박사들은 기형적으로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난 운이 좋았다고 할 것이다.

◇한 교수=명성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한가. 신학자와 교수들에게 명성은 필요충분조건인가, 아니면 자아 실현을 위한 아편과 같은 것인가.

◇콕스 교수=나는 ‘세속도시’의 출판으로 너무 일찍 유명해졌다. 명성 또는 인기란 있다가 없어지는 변덕스런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명성이 붙게 되면 항상 사람들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이따금 당황하게 된다. 명성에 집착하게 되면 분별력이 없어지기도 한다. 명성에는 또한 거품이 붙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명성이 전보다 못하다느니 하는 사람들의 말에 슬퍼지기도 하고, 누군가 나보다 더 유명하면 질투심을 느끼도록 자극받기도 한다. 그래서 인기를 무상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한 교수=‘세속도시’로 인해 얻은 인기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강연에 초대돼 나간 적은 없었는가? 명성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 적은 없었는가?

◇콕스 교수=솔직히 말해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강연 요청은 거절했어야 마땅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것이 내가 성숙하기도 전 너무 빨리 명성을 얻었다고 말한 이유이다. 명성이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도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명성은 나의 저술 동기가 전혀 아니다. 누구든지 유명해지기 위해 글을 쓴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만족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성에 집착하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말한다. 명성에 대한 유혹을 극복해라.

◇한 교수=교수님이 지금까지 지도하고 가르친 석·박사 제자들은 얼마나 되는가. 제자들의 국적을 말해 달라. 그 중 한국인 제자들이 얼마나 되는가.

◇콕스 교수=내 강의를 들은 학생들까지 포함하면 아마 수천명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석·박사생만을 포함하면 400~500명은 될 것이다. 그리고 박사는 지난 44년간 약 20∼25명 정도 배출한 것 같다. 2년에 박사 1명을 배출시킨 셈이다. 나라별로 보면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브라질 멕시코 등 세계 각 곳에 분포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미국인 제자들이다. 하지만 내가 그래도 교수들 중 외국학생 제자들을 가장 많은 배출한 것 같다. 석사 졸업생들은 대개 목회자의 길로 갔다. 한국인중에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를 지낸 안재웅 박사(현재 호서대 출강)가 기억에 남는다.

◇한 교수=한국인 제자들이 많은 이유는.

◇콕스 교수=나 외에도 한국인에게 소개된 신학자들이 몇몇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난 한국에 알려진 미국 신학자들 중 한명일 뿐이다. 만일 이유가 있다면 아마 내 책이 한국에서 많이 번역되고 읽혀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 교수=이제 교수님의 최근 저서 ‘신앙의 미래(Future of Faith, 2009)’에 대해 질문하겠다. 이 책을 쓰신 동기는 무엇인가. 이 책을 쓰는데 걸린 기간은. 처음부터 은퇴에 맞춰 출간할 의도가 있었는가. 이 책은 교수님이 그동안 탐구하신 종교연구의 완결판인가 아니면 바로 직전 단계의 책인가. 책을 집필하실 때는 신비주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으신 것 같다.

◇콕스 교수=은퇴에 맞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우연히 타이밍이 맞은 것뿐이다. 나의 최고의 책은 아직 시작하진 않았다. 아마 다음번에 나오는 책일 것이다. (신앙의 미래는) 지난 2∼3년부터 신앙의 미래라는 큰 주제 아래 그동안 관심 갖고 연구해온 것들과 그것을 가르친 것들을 종합한 것이다. 예를 들어 첫째 예수의 의미와 중심성에 대한 재발견에 관한 최근 연구들, 둘째 초기 기독교의 다양한 형태가 4세기 콘스탄틴 하에서 만들어진 신조(creedalism)에 의해 세력을 얻고 응집되는 과정이라든지, 셋째 근본주의 해방신학 오순절운동 종교간 대화 등과 같이 그동안 관심을 갖고 글을 발표했거나 가르쳐왔던 것이다. 이 같은 주제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특정 관점을 갖고 종합하게 된 것이 집필 동기다. 이렇게 성찰하는 것이 나의 연구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나의 지적 만족을 위해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책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다 보니 약 2년 전 쯤부터 본격적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집필할 때 읽고 쓰는 작업을 동시에 한다. 집필기간 중 점심시간만 제외하곤 하루 종일 집필에 매달린다.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분명히 알기 때문에 대부분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사전에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 교수=이미 아마존닷컴 등에 ‘신앙의 미래’에 대한 비평이 나와 있던데. 교수님의 책에 대한 비평을 대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콕스 교수=서평에는 악평, 호평, 아니면 그저 평범한 서평이 있다. 누군가 책을 썼는데 아무도 그 책을 알아봐 주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좌절되는 것은 없다. 다행히 내 책은 항상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것 같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내 책을 읽고 반응한다는 것은 무관심 보다는 좋은 것이고, 저자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내가 본 것은 ‘기독교 세기(Christian Century)’잡지에 실린 랜디 발머(Randy Balmer) 콜롬비아대 교수의 비평이다. 내 책에 대한 그의 리뷰는 분명 자극적이지만 나를 화내게 하는 정도는 아니다. 내 책의 좋은 점도 지적하고 있기에 복합적인 비평이라고 본다. 나에게도 매우 도움이 됐다.

◇한 교수=‘신앙의 미래’ 1장은 교향곡의 서곡처럼 ’영의 시대‘에 대한 교수님의 논거가 잘 피력돼 있어 독자들에게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21세기 세계 종교의 3가지 질적 표징이라고 묘사하신 것에 대해 질문하겠다. 첫째 예상 밖의 종교의 중흥, 둘째 근본주의의 빈사, 그리고 종교의 본성에 있어 돌연변이라는 교수님의 어휘 선택이 독특하다. 이 3가지 표징들에 대해 보충 설명 내지 어떤 관점과 방법이 이런 3가지 표징을 파악하는데 동원되었는지 말해 달라.

◇콕스 교수=나의 신학방법론은 항상 혼합적이다. 즉 한편으로는 현상학, 특히 종교현상학의 방법과 다른 한편으로는 규범적이고 비평적인 신학 방법을 혼용해 시도해 왔다. 우리가 만일 신학의 세계에만 갇혀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의를 기울일 수 없게 된다. 신학만으로는 교회 및 종교 공동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필요한 비판적 판단을 해야 할 때 그러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난 항상 성공적이진 않지만 두 가지 방법론을 나의 연구방법론으로 사용해왔다. 이 방법들은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 내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할 때 폴 틸리히, 폴 레이몬드의 신학, 성서신학 외에도 사회학 비교종교학 종교현상학 등과 같은 여러 학문을 섭렵하며 공부했다. 그 때 사람들은 대체 당신의 전공분야가 뭐냐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난 한 가지 방법만 고수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기독교 세기’에 게재된 서평에서 랜디 발머 교수도 유사한 질문을 했는데, 50년 전 학자들은 현대에서는 종교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근대화는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과 기술의 진보, 최첨단 교육, 문해력 등의 향상을 등에 업고 종교를 무력하게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근대화 이론의 주장 중 하나가 종교는 근대화의 장애로서 현대에 들어서는 쇠퇴하거나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아니면 소멸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적어도 나는 그 시대에서부터 50년이 지나서도 살고 있는 증인 중 한 명이다) 그들의 예측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종교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성장하고 있다. 한국과 같은 경우 경제발전이 진행되는 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가 오히려 급성장했다. 이것은 50년 전 학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21세기에 나타난 질적인 표징 중 하나로서 ‘예상치 못했던 종교의 중흥’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한 교수=‘신앙의 미래’ 39쪽에서 현대 학자들이 최근에 나타난 종교의 돌연변이 현상에 관한 두 가지 의견, 즉 첫째 수평적 초월성, 둘째 신의 내재성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수님의 설명이 필요하다. 고가르텐이나 본회퍼와 교수님 같은 신학자들은 초월적 하나님보다는 내재적 하나님을 더 많이 피력하셨던 것 같다. 하나님 이해에 돌연변이가 일어났다는 것인가. 제가 잘못 이해했다면 수정해 달라.

◇콕스 교수=하나님의 초월성으로부터 내재성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운동에 대한 나의 견해는 기본적으로 성육신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비우고(빌 2:7) 인간의 내재 속으로, 인간과 이 세계의 역사 속으로 화육하신 것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Immanuel)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에 대한 전통적 구분은 어느 정도 부적절하다고 본다. 또한 그것은 세속화 이론과도 연관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속 도시’이후 나의 신학적 성찰로 볼 때 지금은 세속화 이론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세속화가 아니다. 종교 기능이 축소된 것도 아니다. 종교는 새로운 환경과 가능성을 갖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ongoing transformation)고 말할 수 있다. 종교, 특히 기독교는 화육의 능력을 지닌 종교다. 그 자체가 다양하게 성육신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역사 시대의 다양한 문화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한 교수=그렇다면 교수님의 세속화 신학의 초기 생각이 수정된 것인가. 현대 세계 속에는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가 다 공존한다고 보는가. 교수님은 세속도시에서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간은 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했다. 저는 인간이 자유가 많아지면 그만큼 죄를 범할 기회도 많이 주어진다고 보는데.

◇콕스 교수=그렇다. 현대 세계 속에는 신의 초월과 내재가 다 공존하는데 여기서 초월성은 세속적 초월성(worldly transcendence)이다. 도시화는 자유와 죄의 기회를 둘 다 증진시킨다. 따라서 세속화 신학은 진보적 이론이 아니다. 두 가지 줄기가 다 자라게 된다. 즉, 인간은 선한 것과 힘 있는 악이 공존하게 되는 딜레마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한 교수=이런 딜레마를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콕스 교수=인간의 힘만으로는 전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참여하시어 딜레마를 극복하도록 돕는다고 믿는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모든 절망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우주적 협력자(cosmic ally)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주적 역사의 방향은 사랑하는 공동체, 비폭력인 사랑의 승리를 향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모든 좌절과 계속되는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게 한다.

◇한 교수=결국 인간의 딜레마의 상황은 상당부분 우리의 윤리적 결단과 책임에 달려 있다는 말인가.

◇콕스 교수=그렇다. 딜레마를 극복하는데 많은 부분이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교수님의 기독교 역사의 3단계 구분(신앙-신념-신앙)에 대한 방법이 헤겔의 변증적 방법 아닌가.

◇콕스 교수=그것들이 명확하게 독립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초기 신앙의 시대 전에도 신념 중심의 기독교의 증거들이 나타났다. 콘스탄틴 시대부터 신념의 시대까지도 신앙의 시대 특징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그 시대 사람들은 사실상 신조가 뭔지 몰랐다. 사실 신조는 신학자들의 발명품이다.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시대 구분에서 그 특징들이 중복된다고 봐야 한다. 내가 영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유럽중심 형태의 기독교가 쇄락하고 지금은 세계 기독교 인구 대부분이 구 기독교왕국인 유럽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아프리카와 중국 등 아시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해를 갖도록 했다. 현저하게 구분되는 AD 3세기까지, 그리고 다음 시대와 현대로 구분 되는 시대, 이런 식으로 구분했지만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한 교수=왜 두 번째 시대를 유난히 길게 구분하는가.

◇콕스 교수=지정학적 요인으로 종교 흐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배가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다. 니케아회의에서부터 중세 유럽 출현,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배척(ostracism), 민족주의 출현의 시대까지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었다. 특히 기독교 역사에서는 유럽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가 약화되자 기독교도 그 중심이 바뀌게 됐다. 21세기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분산되고 있다. 이제 중심이 없어졌다. 기독교는 아시아 아프리카로 그 축이 이동했다고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는 비중심화되고 있다. 글로벌화는 차라리 다양성 가운데에서도 일치성을 나타나기 때문에 비중심화된 글로벌 기독교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한 교수=우리는 언제부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뭔가 부족하면 ‘초기 신앙으로 돌아가자’ ‘종교개혁사상을 다시 회복하자’ 즉, 아드 폰테스(Ad Fontes)를 주창해 왔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지는 않을 텐데.

◇콕스 교수=아드 폰테스를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하셨던 사역,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는 일을 지속한다면, 철저히 그가 했던 것과 우리의 지금 하는 일이 일관되는지 적어도 점검을 해야 한다. 우리는 계속 우리 사역을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개혁사상의 슬로건은 ‘한번 개혁된 교회는 계속하여 개혁한다’는 것이다. 개혁된 교회란 없다. 오직 개혁하고 있는 교회만 있을 뿐이다. 노스탈지아나 낭만주의적 견지에서 초기나 개혁시대를 그리워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 교수=이 시대를 영의 시대라고 명명하셨는데, 신앙-신념-불신앙의 시대라고 하실 생각은 없는가.

◇콕스 교수=아니다. 차라리 이 시대를 신앙으로의 귀환 또는 회복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세속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영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최근 영, 영성, 영적 사람 등과 같이 영과 관련된 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아직도 이 용어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신)을 찾으려는 노력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우리가 수용한 교리와 제도적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대해 아직도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구도자들의 접근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시대를 영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한 교수=교수님의 책의 거의 끝부분에 글로벌 오순절 운동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교수님은 이 운동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한국의 오순절교회운동과 관련해 언급해 달라. 20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기독교의 부흥을 위해 부인할 수 없는 공헌을 했다고 보는가. 저는 브라질 등 남미와 아프리카, 유럽, 중국 등지에서 성장하고 있는 오순절운동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는. 다음 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오순절 교회 지도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콕스 교수=오순절교회운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100년 전 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작은 흑인교회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가난한 소수 종족인 흑인, 멕시칸 이민 노동자들과 백인 빈곤층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들은 종종 모여 기도하고 사도행전 2장에서 말한 것 같은 성령강림을 경험했다. 세기 말이 다가오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재림하기) 전 교회의 죄를 성결하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교회 분열, 즉 가톨릭과 개신교의 분열, 그리고 개신교 교회들간의 분열, 교회 내 인종차별주의 등을 모두 죄라고 보았다. 초기 오순절교회운동의 지도자인 윌리엄 J 시모어(William J Seymour)는 교회성장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일어나도록 지켜본 흑인 설교자였다. 그가 설교할 때 치유와 방언, 황홀한 비언어적 기도, 비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같은 현상을 경험했다. 그들을 ‘holy roller’라고 부르는 것 같이, 몸을 많이 움직이는 율동과 발을 심하게 구르는 춤으로 격정적이고 체화된 예배 형태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발전시켜 나갔다. 이것은 당시 개신교 교파의 예배 전형으로부터의 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운동은 계속 성장해 오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위 제3세계라고 불리던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인도 등에서 급성장했다. 1950∼60년 후엔 한국과 중국과 같이 아시아권과 라틴아메리카에서 경이로운 성장을 나타냈다. 가장 놀라운 성장은 라틴아메리카 가톨릭 국가에서의 오순절운동이다. 남미 국가들은 종교적으로는 대부분 가톨릭 국가였다. 한때는 하루에도 수천 명씩이 오순절교회로 발길을 돌렸다. 또한 스페인과 이탈리아 시실리, 특히 구소련 우크라이나 등 같은 동유럽과 인도에서도 오순절교회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기독교인의 4분의 1이 오순절교인이라고 한다. 나는 오순절운동이 앞으로 계속 성장하지 못할 것 같은 이유를 아직까지는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운동은 미래에 대한 소망과 많은 매력적인 패키지를 제공하고, 다른 공동체에서는 가져보지 못했던 예배의 감격, 치유, 신적 권위와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 경험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시어 꿈과 비전을 주셨듯이 오순절운동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개념과 꿈을 갖도록 했다.

오순절주의는 또 다른 형태의 제도적인 교파를 세우는 것보다는 하나의 종교적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차라리 신앙적 기질, 또는 다른 형태의 성령의 화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주된 오순절운동 중 ‘하나님의 성회’와 같이 큰 교파를 형성한 것도 있지만 기존 교파에게 영향을 끼치는 형태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남미에서 시작된 가톨릭교회 내 카리스마운동이 지금은 북미 지역으로 확산됐는데 그 규모가 매우 크다. 흥미로운 것은 기존 교회들이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성령 운동이나 카리스마 운동을 받아들이거나 일으키면서도 그것을 오순절운동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공식적인 조직으로서의 오순절운동은 매우 분열적이고 분산적이어서 누가 중심 권위인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순절운동은 교리를 많이 강조하지 않고 직접 경험하는 신앙을 중시한다. 오순절운동의 목적은 성령의 은사를 인식하고 깨닫는 것이지 교파나 교회를 설립하는 데 있지 않다. 난 기독교 교회 내 이런 운동이 당분간 계속되리라 전망한다. 아울러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글로벌 오순절주의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고 공헌을 해왔다. 이 교회는 오순절운동이 범세계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리더십과 재정을 제공해왔다. 오순절운동 성장과 파워의 중요한 상징이자 기념비적인 지표(cachet)가 됐다. 조용기 목사는 한때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세계 오순절운동 성장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그의 에큐메니컬운동에서의 리더십은 분명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공헌이었다고 평가한다. 대부분 오순절교회들이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을 멀리하는 풍토에서 그는 과감히 자신이 시무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가입시켜 에큐메니컬운동에 앞장서왔다. 그는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세계 오순절교회 역사 속에서의 영향력과 공헌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의 뒤를 이은 이영훈 목사 역시 매우 헌신적이고 매력적인 은사가 있는 목회자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것으로 난 기대하고 있다.

오순절운동의 또 하나 특징은 국내적 성장에 국한되지 않고 그 지경을 세계로 넓히려는 글로벌 지향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 민족,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국제적 글로벌운동의 성격이 있다. 조용기 목사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으로 가서 선교하듯이 서로 선교사와 설교자들을 국경을 초월해 초청하는 것이 세계 오순절운동의 중요한 특성이다. 종교가 피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민족주의와의 결탁이라고 생각한다.

◇한 교수=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60% 이상이 작은 교회들이고 그들의 반정도가 재정적으로 미자립 교회이다. 작은 교회들이 대형 교회에 대해 공격적이고 기업적인 교인 유치 캠페인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식이 있다. 왜냐하면 한국 기독교가 거의 성장을 멈추고 새 신자 증가란 사실상 수평이동한 기존 신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오순절교회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는가.

◇콕스 교수=이 질문은 내가 한국의 작은 교회 형평을 잘 모르기 때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작은 교회들이 메가처치때문에 위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먼저 메가처치가 지닌 규모 때문이다. 메가처치 자체가 사람들을 매료하는 홍보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는 한국교회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미국 메가처치의 인기있는 비결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회중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작은 목회 그룹인 셀에 소속되고 철저히 관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 구제하는 사역, 즉 사회적 약자인 노숙자들(홈리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거나 빈곤층 어린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일 등과 같은 일에 참여한다. 새들백교회 교인들은 이런 유형의 목회에 동참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메가처치지만 작은 교회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강점이 된다. 그렇다면 작은 교회라고해서 이런 목회를 해서 안 된다는 이유는 없지 않는가. 목회자가 교회 크기에 대해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한 교수=한국의 장로교회는 가장 규모가 큰 교파이다. 하지만 그들 중 아직도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거나 예전에 있어 참여조차 금하는 극단적 보수 장로교가 있다.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이러한 교회들의 여성 상황(여성 목사 및 장로 안수 거부, 여성 설교 반대, 공적 예배 기도 반대 등)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는가.

◇콕스 교수=이 이슈는 이미 대가를 치렀다. 기독교 교회와 타 종교의 리더십에 있어 여성의 현존은 이제 막 파도가 일고 있다. 이를 잠재울 이유는 없다. 나는 페미니스트운동이 매우 건전한 운동이자 여성들의 오래 숙원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들이 갖지 못한 전혀 새로운 통찰의 범위와 경험들이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자멸할 때까지 자신이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리더십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을 지켜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어느 순간 어떻게 리더십의 기회와 자원으로부터 차단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스트운동이 필요하다. 나는 솔직히 교회 안에서 아직도 여성들의 리더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두려움과 질투 때문이라고 본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신들보다 더 잘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은 여성 국무장관에 여성 CEO들이 즐비하다. 하버드대 총장도 여성을 임명하고 있다. 머잖아 여성 대통령도 나올 것이다. 나날이 여성의 능력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교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아직 가톨릭교회와 보수교회들이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이제 이 같은 논쟁은 구시대적인 것이다. 여성문제에 관한 한 후진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남미와 미국의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성직자가 되려는 남자들마저 줄어들어 신부가 없는 교회가 늘어가고 있다. 그들이 아직도 여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마 여성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도권을 잡고 교회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 교수=최근 한국의 대학이나 신학대학원에서 페미니스트신학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시들어 가고 있어 여성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다. 제가 가르치던 여성학 강의도 수강생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을 교수님은 어떻게 분석하겠는가. 여성신학은 과연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정착하고 있는 단계일까. 학문으로서의 여성신학에 대한 실존적 질문이 필요한 것 같은데.

◇콕스 교수=여성들이 페미니스트신학을 처음 시작할 때 많은 페미니스트 주제들을 다루었다. 예를 들어 망각됐던 성서의 여성들, 여성이 경시됐던 기독교의 역사, 페미니스트의 성찰이 무시되었던 목회 상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페미니스트 주제들이 다루어졌다. 10∼15년이 지난 지금 이런 총체적 페미니스트 주제들이 어떤 면에서는 고갈된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어떤 이는 이들 주제에 대해 계속 흥미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가 이제는 없어진 것 같다. 캐론 킹은 하버드대의 나의 후임 교수로서 초기 기독교의 외경에 대해 연구하는 아주 훌륭한 학자다. 그는 초기 페미니스트 신학자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페미니스트 투쟁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여성들의 투쟁이 아직 성공적인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달성됐기 때문이다. 진짜 투쟁 정신은 25년 전에 있었다. 물론 가톨릭교회나 남침례교회 등은 아직도 여성 안수를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런 곳에서는 여성들의 투쟁이 충족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여성이 대학 교수직을 얻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대체로 이 전쟁은 끝난 것 같다. 단지 전쟁이후 소위 청소 캠페인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만 진행 중이다. 그러므로 초기 페미니스트 세대들 가졌던 결단과 에너지 같은 극단적인 투쟁은 아마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여성신학의 위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성신학이 성서신학이나 역사신학 등에서 신학방법론을 발견해온 것처럼, 아마도 해방신학과 같은 분야에서도 학문적 사명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와 가난한 자를 위한 예수의 최우선적 선택, 또는 평등주의 교회론에 대해서도 여성신학자들은 관심을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 오순절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순절운동은 자체의 교파를 갖는 것을 거부해왔기 때문에 교파를 가질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 씨앗들이 다른 곳에서 퍼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어떤 여성신학자의 그룹은 생태학적 페미니즘(eco-feminism)을 논의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신학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징조다. 즉, 위험에 처한 모성 지구를 생태학적으로 우려하고 페미니즘의 성찰과 연결짓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다. 그리고 남성신학에 비해 여성신학은 언제나 영과 성령에 더 많은 흥미를 가져 왔다고 생각한다. 성령이 종종 지혜나 소피아 등과 같이 모호한 여성적 용어들로서 표현돼 와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영의 시대를 바라보며 살고 있고, 또한 영의 중요성이 신학 안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이 정말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를 삼위일체론자라고 말해왔지만 사실상 우리는 이위일체론자들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아버지와 그의 2세 파트너인 아들만을 믿어 왔던 것인데, 이제 보다 더 긍정적으로 성령을 받아들이고 있다. 페미니스트들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한 교수=교수님은 20세기의 마지막 신학자로서 살아있는 전설이다. 고가르텐이나 본회퍼처럼 교수님을 현대신학의 한 유형으로서 세속화 신학자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가. 아니라면 어떻게 불리기를 바라는가. 원하지 않아도 후학들은 교수님의 신학을 분류하게 될 것이다. 미래 사람들이 교수님을 어떻게 불러주기를 바라는가.

◇콕스 교수=나를 세속화 신학자로 분류하는 것을 반대한다. 50여 년 전 ‘세속도시’가 출판되기 전 그 시대에는 세속화는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나와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세속화를 매우 우려되는 현상으로 보았다. 그래서 원제를 ‘세속도시의 하나님’으로 붙였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세속도시’라고 하자고 주장해 책 제목이 ‘세속도시’가 됐다. 내가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성서적·신학적 관점에서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정치·문화적 제도나 가정 등을 단순히 편협한 종교적 실체로 인식하면 안 된다. 이것은 말 그대로 성서신학이지 전혀 현대적인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성서는 이미 다 언급했다. 하나님은 역사의 도구를 사용하시고 움직이신다. 고레스를 움직여 바벨론 포로기에 있었던 이스라엘 후손들을 해방시켰던 것처럼 역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나는 교회의 제도적 파워와 특권의 쇠퇴는 그리 나쁜 소식만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소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논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관리인이나 현상유지자 역할을 그만두고 교회 본연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입장에서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세속도시’에서 실수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제도적인 종교의 쇠락을 예측한 것이다. 그 시절에는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전망했다. 그러나 이 전망은 적중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이슈는 종교와 세속화가 아니라 기독교와 종교들간 이데올로기, 경쟁적인 다른 세계관들, 이들이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가끔 충돌하기도 하면서 다른 세계관, 다른 가치관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 모이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면서 서로 배우며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세속도시를 쓸 당시의 전통적이고 현대적인 종교와 세속화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신학자로서 나는 지금 종교적으로 다원화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다원화된 세계에 살면서 기독교가 어떤 특정 공헌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미래의 나의 독자들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연구와 나의 종교 연구의 관심 이동과 내가 세속화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즉, 60년대 이후 기독교가 더 이상 서구의 종교가 아닌 세계의 종교로 확산돼 가는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종교 다원화, 그로 인한 갈등 현상에 대해 내가 응답해 온 방식이 곧 나의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 줄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내가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것은 기독교가 더 이상 서구의 종교가 아니라 세계의 종교이고, 특히 기독교를 금하거나 소수인 지역에서조차 기독교가 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출간된 ‘신앙의 미래’도 한국어, 독일어로 번역됐다. 내년 5월에는 로마에서 이 책에 대한 강연을 부탁받았다. 이 책의 가치는 아마도 신학적 관점에서 종교의 미래를 예측했다는 점일 것이다. 내 책이 미국 밖에서 더 많이 읽히고 있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한다. 특히 미국에 많은 신학자가 있는데 내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세계 기독교가 내 전공인데 그것에 대해 써 보라는 세계 독자들의 요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책의 독자는 내 책이 언제나 이들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사려 깊고 비전문적인 종교인과 기독교인, 개인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많은 자들이다. 전공이 종교가 아닌 사람들도 신학에 접근이 용이하도록,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한마디로 나는 신학 책이 비즈니스가 잘 되게 하는 사람 중의 한명이다.

미래의 일반 독자들이 나를 기독교학자로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다. 기독교인들이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나를 보다 넓은 영역의 신학자로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기독교만을 옹호하는 호교론자는 되고 싶지 않다. 나의 사상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타 종교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후학들이나 미래 독자들은 나를 평가할 것이고 분류할 것이다. ‘신앙의 미래’가 나오자마자 논평자 랜디 발머가 즉시 나를 ‘세속화 신학자요, 기독교와 문화 학자’라고 레벨을 붙이고 그의 분류 상자 속에 가둬 버렸다. 그러나 나는 이미 언급했지만 내가 살았던 시대의 변화무쌍한 종교 사회의 다원화 속에서 나의 신학과 색깔을 갖고 기독교적 응답을 해 온 기독교 학자로서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한 교수=끝으로 한국에 계신 교수님의 애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시기를 바란다.

◇콕스 교수=11년 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동일하게 반복하고 싶다. 그때 나는 이런 말을 했다. 한국 크리스천들이여, 자신의 소리를 가지라! 한국인의 소리, 아시아인으로서의 소리를 갖고 좀 더 넓은 신학적 대화로 나오라. 지금까지 서구 중심의 신학적 대화는 암울한 소리였다. 이제는 희망과 활력이 넘치는 한국 기독교의 소리를 세계에 들려주어야 한다. 하버드대 교과목 중 한국신학에 관한 것이 있는가? 물론 지역연구로서 한국학 연구나 한국어 과목은 있지만 한국 기독교와 한국신학을 알리는 과목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한국인이여, 보다 큰 세계의 부분이 되라. 하나의 통일된 한국신학이 아니라 한국신학의 다양성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세계적인 교회가 몰려 있는 한국교회는 한국신학의 세계화에 앞장서야 한다.

(번역자 주:각 교파의 이익과 홍보에만 열정을 제한하지 말고 보다 큰 세계의 신학적 대화에 참여 할 때이다. 내가, 우리 교파가, 우리 교회가 한다는 생각보다는 교파와 종교를 초월해 지금 하나님이 한국역사 속에서 움직이며 임재하심을 인식해야 할 때인 것이다. WCC 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된 것은 한국인과 우리 역사 속에서 더욱 친밀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위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정리=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posted by johnworld